영보농민항일운동 이일선 선생 독립유공자 추서

제80회 순국선열의 날 맞아 대통령 표창
[ 2019년 11월 22일 제245호 ]
장정안 기자l승인2019.11.22l수정2019.11.2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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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영보항일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른 故이일선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영암항일독립운동유족회에 따르면 덕진면 영보리 출신인 故이일선 선생은 1932년 덕진면에서 여러 동지들과 함께 동면 운암리 지방의 소작권 이전 횡포에 항거, 동리 청년회관에서 청년회원 수십 명을 모아 소작권 이전의 방지방법에 관한 협의를 하여 구 소작인을 보호하고 신 소작인의 경작을 중지하게 하였으며, 1932년 6월에는 덕진면 영보리 영보정에서 청년회원 수십 명이 모여 소작권 이전 방지를 협의한 후 동면 운암리와 백계리 방면에서 신·구 소작인의 집에 들어가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을 꾸짖고 동인들을 응징한 후 소작쟁의만세를 고창하고 노동가를 부르며 시위행진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벌금 30원의 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이일선 선생을 비롯한 당시 시위대가 외친 구호는 “일본인은 우리의 논과 밭을 내 놓아라”, “마름의 횡포를 지양하라”, “일본인들은 이 땅에서 물러가라”였다.

영암항일독립운동유족회 최윤호 회장은 “이번 이선일 선생이 유공자추서를 받음에 따라 23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돼 기쁘다”며 “하지만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지 못한 분이 50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루 속히 이분들도 유공자로 추서될 수 있도록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영암농민항일운동은 일명 ‘영암영보 형제봉 사건’으로 영암의 청년회원과 농민들이 1932년 5월1일 덕진면 영보정에서 메이데이를 기념하여 항일만세운동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932년 6월 4일(음력 5월 1일) 영보리 형제봉에 수십 명이 모여 소작권 이전을 반대하는 결의를 하고, 마을로 내려와 소작인을 응징하고 항일만세 시위를 하다가 74명이 체포된 사건이다.

 

장정안 기자  news@woori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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