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끌려갔던 아버지…초근목피로 연명했던 가족들

[2019년 10월 18일 / 제240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영암 사람들 <10> 노경선 기자l승인2019.10.18l수정2019.10.2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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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읍 대신리 故김희동 씨 4대 독자 불구 일제 강제징용

1943년 8월 영암읍 대신리에서 4대 독자로 4남매의 아버지였던 故김희동 씨는 갑작스럽게 일본 순사에게 붙들려 갔다. 평범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김씨가 붙잡혀간 이유는 일제강제동원 대상자였기 때문이었다.
김씨 뿐만 아니었다. 마을에서 건강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은 모두 끌려왔다. 그렇게 그들이 간 곳은 일본의 한 탄광이었다. 당시 2살이었던 장남 김덕신 씨는 “내가 2살 무렵이었는디 어찌 그 삶을 안당가. 근디 아버지한테 조금씩 주워들은 얘기만 하더라도 기가 막히드라고”라며 흐릿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일제강제동원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탄광의 위치나 전범기업 이름조차도 모른다. 다만 바닥의 경사가 45도 쯤 될 정도로 매우 가팔라서 제대로 발을 딛고 내려가기 힘들 정도의 환경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자신의 부친을 비롯한 강제징용들은 허리도 제대로 펴기 어려운 석탄굴 속에서 중노동을 견뎌내야 했다.
높은 온도와 비좁은 내 작업 등 최악의 노동조건이다 보니 일본인 광부는 거의 없었고 일제가 억지로 끌고 간 조선인 노동자들만 가득했다. 쉬는 날도 없었다. 눈이 뜨면 탄광에서 있었고 숙소로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잠깐의 눈을 부칠 수 있는 잠시의 시간뿐이었다.
특히 탄광에서는 한 시간 후에 죽을지 두 시간 후에 죽을지 죽을 것만 생각했지 살 생각은 사치에 불과했다는 것이 살아생전 김씨 부친의 증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본 순사에게 집안의 가장이 끌려가 생사조차도 알 수 없는 날이 길어지자 가족들의 삶도 엉클어졌다. 당장 갓난 아기를 비롯해 4명이나 되는 자식부터 2명의 시어머니까지 7명에 달하는 가족들의 입에 풀칠하는 것이 시급했다.
이에 김씨의 어머니 故장막여 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여성의 몸으로 힘든 농사일부터 영암 5일 장날이면 리어카에 야채를 담아 행상에 나서기도 했다. 밤낮없이 일을 했어도 가정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먹을 끼니가 부족해 풀을 뜯어 죽을 쒀 먹고 자운영 꽃 등을 따다 무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남편이 오면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어머니 장씨의 기대는 산산히 무너졌다.
장씨의 바람대로 일본으로 갔던 남편이 2년 만에 기적처럼 생환했지만 예전의 남편의 모습은 아니었다. 강제동원 과정에서 얻은 골병과 후유증으로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10남매로 늘어난 자녀들과 시부모와 병든 남편까지 가족들의 삶은 ‘초근목피’ 그 자체였다. 하루 24시간을 쪼개며 살아온 어머니의 노력 끝에 가정 형편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못 배우고 힘없고 빽 없던 탓에 일제강제동원에 끌려가야만 했던 남편과 같은 삶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기 싫어 어려운 살림에도 학교를 모두 보내고 악착같이 뒷바라지했다.
김덕신 씨는 “아버지의 강제징용의 삶은 내가 직접 안 봐서 잘 모른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어머니의 삶은 누구보다 잘 알제. 자신은 못 먹어도 자식들의 배가 쪼그라드는 것은 못 봤고 자신은 아파도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단 하루도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 일찍 돌아가셔 부렀어. 자식으로 너무 가슴이 아픈 것이 그것이여”라고 말했다.
몸이 불편한 자신을 대신해 밤낮없이 일을 했던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김씨는 약주를 하면 강제징용 당시에 대한 아픈기억을 안주삼아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것을 볼 때면 자식들의 가슴은 찢어졌다.
김씨는 “아버지는 강제징용 후유증으로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몸을 혹사하시다 일찍 돌아가시면서 우리 자식들에게는 대못이 박혀 있어”라며 “이제라도 일본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만족할 수준은 아니더라도 응분의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면 좋겄어”라고 바람을 밝혔다. 
 

노경선 기자  demat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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