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에 죽임을 당하고 나서야 지옥은 끝났다”

[2019년 8월 23일 / 제233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영암 사람들 <3> 박준영 기자l승인2019.08.23l수정2019.08.2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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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 대법원에서는 강제징용에 따른 피해자에게 전범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판결이 잇따랐다. 대법원 판결 이후 국내에서는 일본제철, 후지코시, 미쓰비시 같은 전범기업의 국내 재산을 압류하기 위한 법적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이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통해 경제보복을 자행하며 국가간 갈등으로 확대했고, 우리 국민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나고야 미쓰비시 비행기 공장 강제징용자 故 유사용 씨
영문도 모른 채 강제징용 된 후 폭격에 숨진 후에야 귀향

1945년 1월 미군 폭격기 B29전투기가 나고야를 폭격해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B29가 최초로 나타나서 신비로운 네 줄의 백선을 그으며 사라지더니 점차 늘어 100대가 습격했다.
당시 나고야는 일본 항공기의 생산기지였다. 수 일 째 계속된 폭격에 시가지, 주택지 등 나고야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됐다. 그리고 23세의 나이에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서호면의 故유사용 씨도 운명을 달리했다.
유사용 씨는 서호면의 엄길리에서 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굶지 않을 만큼 살았고 마을의 한 여성과 혼인식을 갖고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1942년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일본순사들의 손에 끌려가면서부터 유씨의 인생도 180도 바뀌었다.
일본순사들에 의해 끌려간 곳에는 인근 마을에서 살던 김갑선 씨도 있었다. 영문도 모른채 끌려온 이들은 수일간 기다린 끝에 여수와 대마도를 거쳐 일본에 도착했다. 나고야 미쓰비시 공장에 짐을 풀자마자 일이 시작됐다.
여기에 왜 왔는지 어떤 곳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상상할 수 없는 노동의 강도가 연일 계속됐다. 일하고 또 일하고 유씨를 기다리는 것은 강제노동과 중노동뿐이었다. 육신만 힘든 게 아니었다. 자유로운 외출과 기본적인 치료도 받지 못하는 인권이 완전히 무시된 노역장의 환경으로 정신도 극도로 피폐해져갔다.
그리고 광복을 7개월 앞둔 1월 14일 유사용 씨는 굉음을 내며 날아오는 미군 전투기 B29의 폭격에 의해 숨을 거뒀다. 4형제의 막내이자 이제 갓 결혼해 부인을 고향에 두고 고향으로 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20대의 청년은 한줌의 재가 돼 일본 군인들이 건네는 조그만 상자에 담겨 고향으로 돌아왔다.
바로 2005년 ‘전라남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신고 조사기록’에 기재된 내용이다. 그리고 故 유사용 씨는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로부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제17조에 의거 일제강점 하 강제동원에 의한 피해사실로 인정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피해신고는 조카인 유길안 씨가 신청했다. 유 씨는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이라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일본 순사 두 명이 와서 갑자기 잡아가는 것은 뚜렷하게 기억난다”며 “어떻게 사셨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몰랐는데 함께 강제징용에 끌려가서 살아오신 김갑선 씨로 인해 어렴풋이나마 막내 작은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막내 아들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왔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2~3명의 군인이 와서 유골함을 건넨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2006년 노무현 정부의 보상금 대상에서도 유길안 씨는 직계존속이 아닌 조카라는 이유로 피해 유족에서 제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카 유씨는 막내 작은아버지와 끈을 쉽게 놓지 못한다. 자신의 막내 작은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미쓰비시로부터 아직 명확한 사과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로 말미암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본 경제보복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분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조카 유씨는 “몇 푼 안 되는 돈 받아도 그만이고 안 받아도 그만이다”며 “죄송하다는 네 글자가 뭐가 그리 어렵다고 저렇게 하는지 너무 분하고 이제라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막내 작은 아버지가 편히 잠드실 수 있게 순리대로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박준영 기자  news@woori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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