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의 후예가 득실거리는 한국 지식계

[2019년 8월 16일 / 제232호] 21세기 일본의 실상과 허상 - 3 영암우리신문l승인2019.08.16l수정2019.08.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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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오늘의 한국에서 여전히 10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말하라면 나는 그것을 한국인들의 정신문화 수준이라고 답하고 싶다. 한국인들의 정신문화 수준은 아직도 식민지 시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신문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주체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지식인 집단’이라고 본다.
후쿠자와 유키치, 그는 1835년에 태어나 1901년에 죽었다. 일본 1만엔권 지폐에 그의 초상이 박혀 있다. 그는 문명지상주의자로서 이토 히로부미의 정신적 리더였다. ‘탈아론(脫亞論)’을 내세우며 ‘아시아의 나쁜 친구들을 사절한다’고 했던 그가 “조선인민을 위하여 조선왕국이 어서 멸망하기를 기원한다.”라고 말한 것은 일찍이 1885년이었다.
유길준, 김옥균, 서재필, 최남선, 이광수 그리고 윤치호 등은 조선에서 모두 선각자연한 개화·계몽의 지식인들이었다. 말이 좋아 선각자지, 나는 이들이야말로 최악성의 친일파들이요 식민지시대의 ‘입진보’였다고 생각한다. 이들이야말로 조선의 정신과 문화를 보이지 않게 오염시킨 주범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하나같이 후쿠자와 유키치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시절 총리 후보자였던 문창극이 강연의 텍스트로 삼은 이가 바로 윤치호였다. 재작년에 나는 민중당 소속의 어떤 지식인이 변절한 친일 언론인이었던 장지연을 본받자는 취지의 글을 올린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마르크스를 흠모하는 지식인이다. 안타깝게도 이 모두가 일본인들이 가르친 낡은 역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의 시점에서 이런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바로 식민지 시대 가장 인기 있었던 인사들이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장투쟁을 외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식민지시대의 연장인 오늘의 분단시대에서 인기 있는 지식인은 많이 다를까? 우리의 비극은 8·15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지식인들이 바로 이 위장한 개화·계몽 지식인들을 내심 인정해오고 있다는 데에 있다. 불과 10여 년 전 서울대학교 논술 시험 제시문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글이 실린 적이 있을 정도이니 알 만하지 않은가?
오늘날 한국에서 인기 있는 지식인들이 일제시대 개화·계몽주의자들을 문제 삼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조선시대를 봉건·미개였다고 폄하하면서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을 ‘봉건통치배’라고 매도하면서도 정작 일제 계몽주의자들을 진지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역사에 가정이 무용하다지만 만약 오늘의 유사진보들이 일제시대에 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미묘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왜 우리가 오늘까지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지의 문제와 관련된다. 결국 우리는 여태 보이지 않는 식민정신, 보이지 않는 친일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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