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부터 군정감사, 3개의 상임위원회까지. 영암군의회는 수많은 회의에서 의사 결정을 내린다. 모든 회의장의 가장 가운데 자리에 앉는 이가 있다.
바로 영암군의회 속기사로 일하고 있는 이가을 씨로 이씨는 회의에 참석하는 군수와 군의원, 공무원들보다도 더 회의에 집중한다. 역사를 남기기 위해서다. 이씨가 작성한 군의회 회의록은 영암군 의정사를 담은 공적 기록물이 된다. 단순히 발언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회의분위기와 발언의 뉘앙스까지 담아내며 군민들이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기록한다.
지난해 7월부터 영암군의회에서 속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가을 씨는 “사람이 말하는 음성과 주변 소리 등을 빠르고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속기사이다”며 “속기사는 항상 조연이기 때문에 되도록 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군의회에서 일하는 속기사는 이가을 씨 혼자이다. 지자체에 따라 상근직으로 채용하기도 하지만 영암은 프리랜서 이씨가 외회가 열릴 때마다 계약을 맺는다. 아직은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이지만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속기사의 길은 쉽지 않았다. 생소한 행정용어가 나오거나 발화자의 말의 속도가 너무 빨라 속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말을 얼버무리면서 의사전달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녹취록을 수 십 번씩 되돌려 듣고 생소한 단어가 나올 때는 인터넷을 수 십 번이고 검색하는 등의 노력을 귀울이며 회의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같은 과정과 시간을 줄이고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회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항상 공부에 매진한다.
신문사설 등을 읽으며 행정용어, 시사용어와 친근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씨는 “속기는 아는만큼 들린다고 생각한다”며 “아무리 타자 속도가 빠르고 경력이 쌓여도 생소한 회의자리에 가면 초보와 다름없기 때문에 항상 배운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속기사 이씨의 보물 1호는 키보드이다. 일명 3벌식 키보드로 불리는 속기사 타자기는 보통 2벌씩 일반 키보드와는 달리 초·중·종성을 한 번에 입력하고 약어도 저장할 수 있다. 숙달된다면 일반 키보드보다 최대 6배가 빠르다.이씨는 “5분안에 1600자 정도는 정확하게 쳐야 속기사 일을 할 수 있다”며 “속기사 타자기가 손에 익다보니 저에게는 일반타자기가 더 쓰기 어려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1년여 간 영암과 인연을 맺다보니 영암군의회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잘 안다. 군의원별 말하는 스타일부터 성격, 의회 내에서의 다양한 이야기까지. 하지만 의회를 나오는 순간 이씨는 일절 의회에 대한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질 않는다.
자신의 일은 의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지 외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문장부호 하나에 말하는 이의 의도가 180도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집중하고 신중하려고 노력한다.
이씨에게는 목표가 있다. 바로 법원 속기사가 되는 것이다. 아직은 배우고 쌓아야할 경험이 부족하지만 속기사로서는 한번 쯤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영암에서의 경험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속기사는 하나의 서비스직으로 항상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의뢰인에게 신뢰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직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차근차근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면서 군민들에게 가장 정확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면 언젠가는 저에게도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