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편견과 강변을 고수하는가

[2019년 5월 10일 / 제219호] 영암우리신문l승인2019.05.13l수정2019.05.1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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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우리가 흔히 쓰는 ‘봉건’이라는 말에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봉건적’이라는 파생어는 구태, 인습적이라는 뜻을 가진다. 또한 봉건사회, 봉건국가라는 합성어는 신분, 이념, 종교 등의 요소에 의해 차별과 억압이 이루어지는 체제를 뜻한다.
‘우리가 잘못 알고 쓰는 우리말 사전’ 유의 책들에는 예외 없이 ‘봉건’이 등재되어 있다. 
먼저 왜 이렇게 된 것인지를 살펴보자. 우리말 봉건(封建)은 원래 ‘땅을 나눠주어 나라를 세우다’는 뜻이다. 그러나 서양말은 확 다르다. 봉건주의는 영어로 ‘feudalism’인데 이 말의 어원인 ‘feud’에는 ‘오랜 동안의 불화와 반목’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feudalism’을 봉건주의라고 번역한 것은 명백한 오역이었다. 이 결과 서양에도 ‘feud’에 영지, 봉토라는 뜻으로 의미가 추가되었다. 아무튼 서양의 feudalism은 중세 유럽에서, 영주가 가신(家臣)에게 봉토를 주고, 그 대신에 군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주종관계의 제도를 의미했다.
반면 동양의 봉건제도는 주나라의 것을 말한다. 이것은 기원 전 11세기에서 기원 전 3세기에 이르는 까마득히 먼 옛적의 것이다. 게다가 주나라는 당대 상황에서 대단히 이상적인 체제로서 많은 후세인의 칭송을 받은 나라이다. 공자가 가장 흠모한 나라도 주나라였다.
중국의 봉건제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秦)의 중원 통일로 막을 내렸다. 이후 한대(漢代)에는 봉건제와 중앙집권제가 절충된 군현제가 실시된다. 단 일본은 특이하게도 서양처럼 최근세까지 봉건제를 유지했다.
중국보다 약간 뒤진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래 중앙집권체제를 지향해 왔다. 그러다가 고려시대 중, 후기 중앙집권제가 동요하면서 귀족정치, 호족정치의 폐해가 나타났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역성혁명은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 조선왕조를 설계한 정도전은 한편으로는 주나라를 흠모하면서도 정치제제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선택했는데 이는 말 그대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었다.
조선은 봉건국가였는가? 식민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과거에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이제 남들은 조선이 봉건국가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만 유독 조선이 봉건국가라고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봉건제도를 경제적으로는 영주와 농노의 주종관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도전이 구상한 토지제도는 전국의 토지를 국가가 몰수하여 인구수에 따라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가리켜 ‘계민수전(計民授田)’이라고 했다. 이것은 전 국민을 자작농으로 만들려던 것이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조선을 봉건국가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인다. 나는 그들이 모종의 저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잘못 배웠거나 편중되게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라고 하면서 우리 역사에 무지한 것에는 분명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민(민중)혁명을 강조하다 보면 조선을 봉건국가로 규정하여 타도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있다. 중국의 손문은 신해혁명과정에서 청조를 타도의 대상으로 설정했다. 
이후 마오의 혁명군도 청조를 청산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조선은 동학혁명과 의병투쟁의 과정에서 차라리 복벽(왕조의 복원)을 강조했지, 조선왕조를 타도의 대상으로 여긴 경우는 거의 없었다.
봉건주의가 일차적으로 유럽적 현상이라는 것을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봉건제가 비유럽에서 가장 명백하게 존재한 경우는 일본인데, 일본에서는 실제로 수세기 동안 봉건주의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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