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자들은 왜 조선역사를 모르는 것일까

[2019년 4월 5일 / 제214호] ‘새 시대의 자주를 위하여’ - 22 영암우리신문l승인2019.04.05l수정2019.04.0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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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마르크스는 노동자, 즉 피착취자의 문제를 확산시키는 데 공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마르크스를 문제로 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유럽인 마르크스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 마르크스 신봉자들 때문이다.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일단 우리 역사를 잘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그들은 조선역사에 대해서는 심각한 수준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 초기와 조선 말기 두 가지 사실만 살펴 보자. 먼저 최영과 이성계이다. 최영과 이성계는 공히 고려 말 민족보위투쟁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성계의 헌신과 공로는 최영보다 우월했다. 그의 투쟁은 조선 8도 거의 전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당시 인민들이 이성계에게 최고의 신망을 주었던 것이다. 그의 역성혁명은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서는 처음부터 성립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최영은 중앙 기득권자로서 구시대 질서의 옹호자였고 반혁명론자였다. 그런데도 혁명을 지향한다는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최영은 의로운 영웅이요, 이성계는 정권을 찬탈한 무법자라고 여긴다. 왜 그럴까?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운동권 학습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동학항쟁이다. 사실 그들은 동학에 대해서도 일부만 알거나 왜곡된 역사를 알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민항쟁을 유럽식으로 ‘영주 대 농노 간의 농민전쟁’이라고 간주한다. 그런데 당시 조선의 인민은 거의 다 농노가 아닌 농민이었다.
그러므로 농민전쟁이란 명칭 부여는 우리 역사를 유럽의 역사 기준에 꿰맞춘 것으로서 사실과 크게 어긋난다. 동학 1차 봉기는 사회의 모순에 저항한 인민항쟁이었고 2차 봉기는 일본의 침략에 맞선 반외세 투쟁이었다.
또한 그들은 전봉준과 최시형이 얼마나 크게 다른지도 알지 못한다. 사실 최시형은 기회주의적 노선을 걸은 인물이다. 북접의 대표였던 그는 무장투쟁에 반대하면서 일본군 벌창소에 남접군을 토벌해 달라는 건의서를 두 번 제출한 기록이 있다, 그런데도 최시형이나 전봉준이나 둘 다 동급으로 훌륭한 인물인 줄 알고 있다. 왜 그럴까? 공부가 옛날 것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을사늑약을 전후로 하여 조선 역사물을 파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빙성 있는 1차 사료들을 독점하고서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들이 조선역사를 본격적으로 새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16년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발족시키면서부터였다. 이것이 1922년에는 <조선사편찬위원회>로 개명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1937년 《조선전사》를 35권으로 집대성하였으니 이는 실로 21년에 걸친 집요하고도 장구한 대사업이었다.
“(삼국시대부터 근세조선까지 수많은 역사서가 있었지만) 근대 학술의 발달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완벽을 기한 역사라 할 수 없고 만세에 전할 만한 것이 못 된다.”(《조선전사》 서문)
불행히도 당시 친일 식민주의자건 반제 마르크스주의자건 이 《조선전사》를 가지고 조선역사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조선전사》가 남과 북에서 1970 ~ 80년대까지 위력을 떨쳤다. 이후에 나온 통사들도 이 《조선전사》의 변용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북과 남에서 1년 시차로 <조선왕조실록>이 각각 완역되면서 연구 양상이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전에 독서가 멈추어 버린 사람들은 조선역사를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물론 그들도 피해를 입은 것이지만 지식인을 자처하면서 우리 역사의 최신 저작을 읽지 않은 채 함부로 우리 역사를 비방하는 것은 전혀 지식인답지 못한 행태이다.
특히 일부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들은 최신 연구의 성과들을 애써 외면하거나 한사코 부인한다. ‘자본주의 = 근대화’라는 유럽식 등식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단 자본주의가 되어야 프롤레타리아 세상으로 진보할 수 있다는 미신에 빠져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조선은 무조건 자본주의 이전 또는 전근대 사회라고 간주하고 조선 역사에서 전근대적(봉건적)인 요소만을 찾는 데 주력한다. 불행히도 조선에 대한 이런 역사 인식은 식민사관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조선사관을 가지도록 만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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