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공자

[2019년 2월 1일 / 206호] 영암우리신문l승인2019.02.01l수정2019.02.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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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
협의회자문위원 박 성 호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서정주의 ‘자화상’처럼 중국의 대 사상가 ‘공자’의 어린 시절은 어두웠다. 꽃다운 나이의 열여섯살 안징재와 칠순 노인 숙량흘의 사랑의 결정체로 태어난 아이가 ‘공자’였다. 아버지는 공자의 나이 세 살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주검을 수습하고 그 영혼을 달래주는 무당일을 하며 공자를 먹여 살렸다. 그런 어머님마저 공자의 나이 열여섯에 세상과 이별을 한다. 사실상 공자는 고아였다.
왕자로 성장한 석가와 어둠의 자식으로 자란 공자는 출발부터 대조적이었다. 아버지가 목수였던 예수와 공자는 출신이 비슷하다. 세계4대 성현 중 공자가 가장 불우했다고 볼 수 있다. 허나 공자는 나이 서른살에 두발로 세상에 섰다(三十而立)고 말한다. 섰다(立)는 것은 자립을 의미 할 것이다. 예수도 나이 서른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 하였고, 석가도 서른살에 득도를 하였던 것처럼 공자 역시 서른에 경제적인 자립과 함께 정신적인 자립을 하였던 것이다.
공자는 일생동안 3200명의 제자를 키웠고, 석가는 기원정사에서 거지 500명과 더불어 수행 공동체를 운영 했다. 예수는 문둥이, 앉은뱅이, 벙어리, 장님 등의 몸을 치유 하면서 복음을 전파 했고, 소크라테스는 청소년과 더불어 아테네의 길거리에서 문답(대화)을 나누었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태어나 무엇을 하고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은 우리를 괴롭힌다.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 제자를 키우며 쉰살에 이르러 나는 무엇을 하러 태어났는가? 공자의 지천명은 치국평천하의 깨달음이 있었다고 한다. “진실로 나를 등용할 사람이 있다면 1년안에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3년 안에 평천하의 뜻을 성취하리라.”,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나라를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 공자는 호언장담을 했다.
‘주역’에서는 일이 잘 풀릴 때를 조심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노나라의 이웃나라인 제나라에서는 공자의 출중한 역량을 시기하며 강력한 태클을 걸어온다. 노나라의 ‘강성 대국화’를 미리 막아내고 견제하기 위해 제나라는 미인 80명을 선발하여 노나라 왕에게 선물한다. 정공은 미인계에 벌써 넘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왕은 연애도 못하냐며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고 망국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자 공자는 “왕이 신하의 충간을 듣지 않으면, 신하가 떠나는 법이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녹을 먹지만 나라가 도가 없을 때에는 앉아서 국가의 녹을 먹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며 간단한 사표 한 장만 남긴 채 홀연히 노나라를 떠나면서 공자의 파란만장한 천하주유가 시작된다.
14년 동안 세상을 떠돌아 다녔던 공자! 정처 없는 유랑생활의 고단함을 ‘나는 물소도 호랑이도 아니건만 오늘도 들판을 헤매는 신세’라고 자신의 처지를 호소한다. 이러면서도 정치를 잘하는 방법을 물으면 임금이 먼저 임금답게 굴라, 너나 잘하세요, 하니 공자에게 일자리가 생기겠는가? “임금이 나를 써주면 도를 천하에 행하고 나를 버리면 도를 몸에 간직하여 나 혼자 선을 행하면 되는 것이지” 이것이 공자가 일자리를 잡지 못한 원인이었다. 필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공자가 천하주유를 하면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랑자가 되었던 이유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첫째, 그는 중국의 한족 주류가 아니었다. 둘째, 천민 출신이었다. 셋째, 왕의 신하들이 시샘할 정도로 공자의 역량은 매우 컸다. 각 나라의 왕들은 희망에 가득 찬 공자를 등용하고자 했다. 시를 잘 읊지, 글을 잘 쓰지, 말을 잘하지, 음악과 예법에서는 전문가지,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다. 헌데 아니올시다. 왕의 남자들은 이런 공자의 등용을 앞장서서 막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는 능력을 발휘 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정치권력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공자는 14년 동안 죽도록 고생을 했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 한명을 만나지 못했다. 이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뗏목을 띄워 바다를 건너고 싶다”라고 하며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가 공자의 꿈이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공자의 성취는 군자라고 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 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2500여년 동안 동양의 지식인들은 공자가 제시한 군자의 길을 걸었고 조선의 선비들이 지향한 ‘군자의 상’은 오늘 우리에게도 가슴깊이 살아 있는게 아닌가 생각 해 본다.
공자의 가르침 중 의(義)란 무엇인가? 맹자는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라 풀이했다. 백성을 괴롭히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공자는, 군자는 겉과 속이 다른 것을 가장 미워해야 한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고 언젠가는 알아주게 된다. 허나 의인은 외롭다, 날씨가 추워지고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른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 하지 않으면 이것이 군자의 마음이라 가르친다. 알아준다는 것은 권력의 사다리에 오르는 것을 의미 할 것이다. 권력의 사다리는 민심이라는 힘이 바치고 있을 때는 힘을 발휘 하지만 민심이 되돌아서면 매서운 찬서리 밭에 서 있는 외로운 한송이 국화꽃에 불과하다.
불우하게 자란 공자, 억척스럽게 공부 했지만 결국은 주류에 들어가지 못한 아픔이 늘 존재했다. 거대한 체격에 뛰어난 건강, 뜨거운 가슴, 근면과 성실성을 갖고 살았지만 중국의 제후들과 대부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그를 인정하면서도 곁에 두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출세를 하려고 공부를 한 것인가? 도를 체득하면 그만이지, 하는 말에서는 그의 외로움이 절절하게 묻어나오고 있다.
공자가 말한 “의와 도”는,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는 제비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흥부의 마음,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숨겨주는 나무꾼의 어진마음, 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아온 선후배들을 토방으로 불러 따뜻한 차한잔을 대접하며 등을 두들겨 주는 인자한 어머니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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