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한사군 반도 위치설(1)과 임나일본부설(2)이라는 게 있다. (1)은 한사군의 위치를 반도에 국한시킴으로써 우리 역사에서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만듦과 동시에 고조선을 부정하는 논리로 이용된다. (2)는 일본이 우리의 삼국시대 이전에 총독부를 설치하여 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우리 역사의 출발을 A.D 3~4세기로 조작한 식민사관의 대표 급이다.
둘 다 우리 역사의 공간을 축소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결과를 낳는다. 1)은 한국 주류사학에서 인정하지만 2)는 워낙 터무니가 없어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논란은 주로 1)에서 제기된다. 식민사관 극복을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는 이덕일 같은 분은 주로 여기에 치중하지만 그다지 실속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고조선을 기록해 놓은 권위 있는 사서가 일연의 ‘삼국유사’ 하나뿐이라는 데에 있다. (참고로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우리의 삼국시대를 기록해 놓은 것으로서 권위를 가진 거의 유일한 사서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삼국유사’ 건 (‘삼국사기’ 건) 우리의 고대사를 밝히는 데 우리의 생각만큼 권위 있는 역사물이 아니다. 고조선이 한 무제에게 망한 것은 B.C 108년인데 ‘삼국유사’는 A.D 1281년에 편찬되었다. 요컨대 ‘삼국유사’는 고조선이 망하고 나서 거의 1,400년 후에나 편찬된 사서이다. 따라서 이것 하나만으로, 그것도 단군신화만을 달랑 소개해 놓은 것으로 고조선의 존재를 입증하기에는 너무도 부실하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데라우치는 1910년을 전후하여 조선의 민족사와 관련된 서적을 무려 21만 권이나 수거하여 불태워버렸다. 이는 현대 인류사에서 가공할 만한 ‘분서테러’였다. 이에 비하면 진시황의 분서(焚書)는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수준이다. 나는 이 분서테러에서 고조선을 기록해 놓은 우리의 권위 있는 사서가 소실되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사서를 조사해 봐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사서를 찾아 읽을 만한 열정과 독해력이 없었다. 게다가 조선총독부의 어용학자 이병도의 제자들이었던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들은 아예 일본의 식민사관을 거의 비판 없이 수용해 버렸다. 일차적으로 실력이 빈곤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사람은 실력이 없으면 자주를 상실하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는 한 무제 때 기술된 세계 최고 수준의 역사서이다. ‘사기’는 고조선이 멸망할 시점에 쓴 것이다. 고조선이 멸망했을 때 사마천은 38세로서 한참 ‘사기’를 쓰고 있었다.
참고로 역사서는 당대 역사서일수록 권위를 가진다.(예컨대 ‘조선왕조실록’은 매일 매일 그 날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당대 역사 사료의 최고봉이다. 세계 역사상 장장 500년의 당대 역사 사료를 남긴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
‘사기’는 한대(漢代) 이전 3,000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사서이다. 그런데 ‘사기’ 130권 중 제 115권에는 위만조선의 멸망사 200년이 3페이지로 압축되어 기술되어 있다. 이로써 위만조선의 역사는 상당한 실증력을 가진다.
다음으로 ‘관자’가 있다. 제나라의 탁월한 재상 관중의 어록집인 ‘관자’에는 제나라와 조선의 무역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B.C 7세기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위만조선 500년 이전의 조선에 실증력을 부여하는 꽤 권위 있는 저작물이다. 다만 모든 제자백가서가 그렇듯이 ‘관자’ 역시 후대 기술된 저작물이다.
다시 ‘사기’로 돌아가 보자. 사마천은 ‘사기’에다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기자가 조선으로 간 것은 주 무왕 때의 일이다. 주 무왕이 상(商)을 무너뜨린 것은 B.C 11세기의 일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존재는 B.C 11세기로 올라간다.
그런데 후대 기록된 사서보다 더 권위 있는 것이 유물과 유적이다. 세계 고인돌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의 고인돌 유적이 있다. 우리 땅에서 끊임없이 출토되고 있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의 마을 유적지와 각종 유물들이 있다.
단군조선을 시발로 하는 고조선의 역사는 이것들에 의해 실증되어야 한다. 문제는 역사학자들에게 있다. 특히 강단사학이라고 조롱받는 교수들은 분발해야 한다. 그들은 중국의 사서를 더 읽어야 하고 우리의 유적과 유물을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열정과 실력이 빈곤하다. 특히 자기 학설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교수들이 가장 큰 문제다. 그들이야말로 식민사관의 수호천사들이 아니고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