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일제가 물러난 것은 1945년, 70년 이상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에 친일행위를 한 사람의 나이는 지금 최소한 90세 이상이어야 한다. 따라서 친일파는 거의 다 죽었거나 활동을 멈췄어 할 연배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에는 “친일파가 살아 있다”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직접 친일파는 죽었지만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간접 친일파’ 또는 ‘친일파 2,3세’라고나 할까? 어떻든 그들도 친일파라는 점에서 직접 친일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날 한국에 이런 사람들은 의외로 많은데 이게 바로 친일청산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이다.
친일청산을 하려면 식민사관을 극복해야 한다.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조금 거칠게 말해서, ‘너희는(또는 우리는) 식민지가 되어도 싸다’는 역사관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 식민사관에 찬성하는 사람은 없다.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모두 반대한다. 아니 오히려 “식민사관을 타파하자”고 너도 나도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에도 식민사관은 극복되지 못한 채로 있으니 수상한 일이 아닌가?
한국인의 식민사관 극복 논리에는 ‘A–B-C’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 여기서 A는 한국, B는 일본(제국), C는 ‘허구’이다. 동시에 A-B-C는 수준의 순서라고 볼 수도 있다.
B인 일본이 A인 한국에게 말한다.
“너희는 B만도 못한 C다.”
그러자 A는 급한 나머지,
“아니다, 우리도 B다.”라고 대응한다.
“너희가 무슨 B란 말이냐?”
“충분히 B가 될 수 있었는데 너희가 침략했기 때문에 아직 안 된 것이다.”
이런 식이다. 이러는 동안 A는 자기가 A라는 사실을 망각해 버렸다. 이것이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 식민사관의 요체이자 현주소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식민사관 중에 ‘지리적 편견’이라는 것이 있다. “너희는 반도니까 대륙과 섬나라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여기에 대응하는 한국 학자들의 논리는, “아니다. 반도니까 오히려 대륙과 섬나라의 문화를 다 포섭할 수 있다”는 식이다. 여기에 덧붙여, “저 그리스 반도를 보라. 이탈리아 반도는 어떠했는가?”라고 의기양양하게 반박하기도 한다. 일면 그럴듯해 보인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배워온 역사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 커다란 맹점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일단 우리 역사는 반도사가 아니다. 우리 역사를 반도사로 규정해 버리면 고조선이 제거될뿐더러 고구려가 불안해진다. 반도가 아닌데 ‘반도라서 나쁘다’라고 하니까 저돌적으로 ‘아니다. 반도니까 더 좋다’는 식으로 대응해 온 것이다. 덧붙여 여기에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를 전범으로 선망하는 모양주의까지 함의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정작 우리 역사는 반도사를 넘어 대륙까지 광범위하게 아울렀다는 중차대한 사실(A)이 망각된 것이다. 요컨대 이런 식의 대응 방식이 곧 A-B-C 프레임에 걸려든 것이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전신 명칭이 왜 ‘조선반도사편찬회’였는지를 생각해 보라.

[예고] 식민사관의 항목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1)기기사론, 황국사관, 정한론, 일선동조론, 만선사관,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2)타율성론과 정체정론이 있다. 1)전자의 것들은 정치적이고 2)후자의 것들은 문화적이다. 그런데 1)은 효력을 거의 상실했다.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극복되지 않고 있는 2)에 있다. 다음 글부터 집중적으로 몇 회에 걸쳐 2)를 발려 놓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