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아래 첫 번째 지도를 보라. 유럽과 미국의 크기가 각각 아프리카와 거의 맞먹는다. 러시아가 아프리카보다 훨씬 크다. 우리의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는 세계지도다. 하지만 이것은 조작이다. 두 번째 지도를 보라. 아프리카의 실제 면적에다 유럽과 미국, 중국과 인도 등을 겹쳐 놓은 것이다. 실제로 유럽은 얼마나 작은가?
마셜 호지슨(1922 ~ 1968)은 문화적 왜곡이 지리적 왜곡으로부터 출발했음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준 학자이다. 그는 이슬람 역사전문가로 시카고대 교수를 지냈다. 호지슨이 이른 나이에(46세) 죽은 후 에드먼드 버크가 압축 정리하여 엮은 그의 《세계사론》은 이미 세계적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 한국어 번역본도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이론을 읽었거나 기억하는 한국 독자는 드물다. 그만큼 한국 지식계의 분위기가 서구 편향의 모양주의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자기네의 작은 면적을 엄청 부풀리면서 세계의 모든 역사를 그곳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 유럽중심적인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고의적으로 집요한 노력을 쏟은 것이다. 이것을 직수입한 나라가 일본인데, 우리는 일본이라는 최저질의 필터링을 통해 서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주로 학술적인 언어로 포장된 채 여전히 한국 진보 지식인들의 의식에 잠재해 있다.
사실 서유럽은 지리뿐 아니라 인구나 문화적 다양성으로도 인도나 동남아시아와 비슷한 규모다. 물론 유럽은 별도의 대륙도 아니다. 유럽은 인도처럼 반도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유럽 대륙’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가시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네덜란드의 메르카토르가 제작한 지도로서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통용되는 지도다. 이 지도는 1569년 미래의 식민지 대륙으로 가는 항해를 위해 만든 것이다.
우리가 배워온 지도에 의하면 유럽과 미국은 실제보다 엄청 커졌고 남미와 아프리카는 대폭 줄어들었다. 덤으로 이득을 본 곳이 그린란드인데 실제의 크기보다 무려 14배나 부풀려진 것이다. 그린란드의 실제 면적은 아프리카의 4분의 1이다. 물론 러시아 역시 아프리카보다 훨씬 작다. 인류는 무려 500년 동안 이 지도를 보면서 세계를 왜곡하여 인식해왔다.
서구의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의 이미지에서도 지도 못지않은 왜곡을 드러낸다. 역사라는 것은 지도보다 추상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는 용어들이 보이지 않은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모양주의자들이 추앙하는 헤겔은 세계 역사를 가장 불량하게 왜곡한 사이비 학자다.
우리가 배워온 지도는 ‘인종차별적 지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국에는 서구중심역사에 대한 반발이 없다. 인류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의 저변에는 여전히 서구사에 대한 세계사의 변종이 깔려 있다. 서구를 중심에 놓고 다른 지역보다 크게 부풀려 놓은 지도에 의해 강화된 서구 중심의 이미지는 제국주의적 발상과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
호지슨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파악하면 문명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아시아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는 1500년경이 되어서야 서구는 아프로 – 유라시아의 다른 주요 문명들의 문화적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았다.
서구 문명이 고대 그리스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로 발전했다는 상승곡선 논리는 착시현상일 따름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유럽은 르네상스 시기에야 다른 문명들의 수준으로 올라섰는데 이것은 아시아 문명들의 성취를 받아들여 동화시켰기 때문이다. 비유럽은 유럽에 화약 무기, 나침반, 배 후미의 방향타, 십진법, 대학교 등을 전파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먼저 일어났다고 해서 유럽의 역사를 영국사로 환원시킬 수 없는 것처럼, 산업혁명이 처음으로 확산된 지역이라고 해서 세계사를 유럽사로 환원시킬 수 없다”라고 한 호지슨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인데, 이는 특히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정녕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유럽에서 발명되었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에 근거하여 세계사를 유럽 중심의 보편적인 역사로 파악하는 ‘가짜’를 전파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진보가 자주를 갖지 못하는 핵심 요인이다. 이제는 상식선의 이성과 최소한의 정직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