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프랑스혁명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겐가

[2018년 11월 30일 / 197호] ‘새 시대의 자주’를 위한 제언 - 8 영암우리신문l승인2018.11.30l수정2018.11.3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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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자주를 표방하는 어느 진보정당의 당원 교육 프로그램에 독일인이 고안한 유럽중심사관과 프랑스 혁명사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던 적이 있다. 여기가 어디고 때가 언젠데 유럽중심사관이나 프랑스혁명 같은 것을 가르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리오리엔트》의 저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1929-2005)는 논문 <저발전의 발전>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의 저발전을 유발한 것은 ‘봉건제의 온존’이 아니라 ‘서양 자본주의의 수탈’이라고 했다. 이 논문은 종속이론이 부상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세계 정치 경제학계의 새로운 의제로 설정되었다.
프랑크는 ‘서구근대화론’이라는 우상을 파괴함으로써 종속이론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는 특정한 지역이 저발전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전통적인 ‘내재적 요인’ 탓이 아니라 ‘세계체제’라는 미명 하에 ‘강제된 자본주의’ 탓이라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기존의 유럽중심주의 세계사관을 파열시켰다.
이것은 ‘조선 봉건제’를 말하면서, 사학자 김용섭의 철지난 ‘내재적 요인론’을 신봉하는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철퇴와 같은 것이다.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프랑크를 외면하는 것은 옹졸한 짓이다. 이에 앞서 그들은 세계사 연구의 동향 자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크는 자기 자신조차도 19세기 유럽 사회과학자들이 발명한 유럽중심주의에 무의식적으로 걸려들어 있었다고 통렬한 자기비판을 가했다. 유럽의 세계 지배는 길어야 1840년대 이후 150년 안팎 정도인 일시적 현상일 뿐이었다. 그 전에 세계 경제에 중심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럽이 아닌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이며 특히 중국이었다는 것이 이미 공인의 단계를 넘어선 세계경제사관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한에는 프랑스혁명을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 지식인들이 있다. 그들은 나름 고학력으로 일반인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미친다. 나는 이 피해가 자못 심각하다고 본다. 그들은 현란한 학술용어들을 구사하면서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을 입에 올리지만 그동안 내가 냉정하게 관찰한 바에 의하면 결국은 유럽중심주의자들이거나 모양주의자들이다.
지금 우리의 현안 중 가장 큰 장벽은 미 제국주의이다.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자주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마당에 같은 과의 제국주의국가였던 프랑스의 혁명 따위를 배워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우리는 조선의 역성혁명도, 동학혁명도, 임술농민쌀봉기도, 항일무장투쟁 역사도 그리고 광주도 잘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제국주의와 맞서 이기려면 제국주의와 싸워 승리한 중국혁명이나 베트남혁명을 먼저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그들이 말하는 프랑스혁명이나 ‘독일 이데올로기’ 등이 자국의 제국주의 침공을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프랑스혁명은 지금으로부터 230년 전인 1789년 먼 유럽에서 발발한 사건이다. 프랑스 인은 아시아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았던 시기, 우리 역사로는 조선 정조 때였다. 우리는 유럽인이 아니다. 대관절 프랑스혁명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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