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너무 좋아하는 문재인 대통령

[2018년 11월 23일 / 196호] ‘새 시대의 자주’를 위한 제언 - 7 영암우리신문l승인2018.11.23l수정2018.11.2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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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2015년 11월 15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끊임없이 자유와 정의의 편에 서서 행동했던 프랑스 정신”,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파리” 등의 표현과 함께 “프랑스가 인류에게 선물한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테러 당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2017년 6월 13일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내한한 벨기에 공주 아스트리드를 접견하는 자리에서는 “서양의 공주님을 처음 뵙는 것이어서 조금 판타지한 그런 느낌도 듭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왜 이토록 유럽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 모두가 서양을 선망, 동경하는 모양주의의 소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양주의를 청산하려면 제국주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1990년대 들어 국제관계가 급변하고 문화적ㆍ사회적ㆍ인종적으로 다양화되어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등이 대두되었다. 얼핏 보아 이런 현상들은 2차대전 이후 공식적으로 종료된 제국주의와 무관한 것 같지만 사실은 오히려 더욱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에 최근 들어 제국주의를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동양인들은 유럽인이 만들어 놓은 ‘타자’에 대한 잘못된 정체성을 스스로가 그대로 받아들였다. 더욱이 동양인은 서양 사람들이 만든 단선적 진보사관을 비판 없이 수용해 버렸다. 동양인들은 식민지 지배자들이 종속민과의 문화적 타협을 거부하고 그들 자신의 우월감과 ‘지배해야만 하는 숙명’을 확신하면서 여기에 문화적 우월감과 함께 인종적인 오만함까지 가세했음을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
제국주의는 경제적 착취, 정치적 종속, 문화적 침탈 등 3면이 모두 고찰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레닌 식 제국주의론은 주로 경제적 관점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일부 개념, 그리고 일부 시간대의 것에 한정되는 맹점이 있다.
레닌은 1차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파악하고 이 전쟁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결국 자본주의의 멸망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였는데 이런 기대는 그의 조국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실현되지 않았다. 이런 낙관적 오류는 제국주의를 지나치게 금융자본주의의 소산으로만 파악한 한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확히 하자면 제국주의는 식민주의보다 나중에 출현하였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욱 광의의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 제국주의에는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인 것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이집트를 지배하지 않는다. 단지 이집트의 지배자를 지배할 뿐이다”라는 말은 비공식적 지배의 형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유추해 볼 때 작금의 한국은 영락없이 미국의 비공식적 지배를 받는 식민국가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민주, 자유, 평등의 사상가로 알고 있는 서양인들에 대한 호의적 인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말하는 진보적 사상은 서구에 한한 것이었다. 그들의 진보주의는 제국주의를 강력 옹호하거나 두둔하거나 최소한 방조했다. 여기에는 볼테르, 존 로크, 존 스튜어트 밀, 칼 마르크스. 버나드 쇼 등이 망라된다. 이처럼 유럽의 제국주의에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단지 사회주의자들은 정도가 약하게, 덜 노골적으로 제국주의를 비호했을 따름이다.
제국주의는 영웅주의를 조장했다. 우리가 훌륭한 탐험가로 알고 있었던 리빙스턴이 얼마나 지독한 선교 제국주의자인지, 우리가 일견 신비롭게까지 여겼던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얼마나 기만적으로 조작된 인간인지를 알아야 한다.
제국주의는 인종주의를 심화시켰고 여성차별을 한층 강화했다. 이것은 제국주의적 문화예술과 제국주의적인 인간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백인 독점적이고 남성 위주인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여성 차별을 조선시대의 유학 탓으로 돌리는데, 제국주의가 안겨준 부정적인 것들을 식민 모국의 전통문화의 소산으로 전가하는 것 역시 제국주의의 한 단면이다.
제국주의란 한 마디로 말해 폭력적인 지배에 불과하다. 폭력의 행사에는 언제나 신식 무기가 위력을 발휘했다. 1888년 영국군은 20정의 맥심 총을 가지고 1만 1,000명의 수단 인을 사살했다. 1899년 아프리카 서부 지역 차드에서 프랑스군 320명은 1만 2,000명의 차드 군을 물리쳤다. 1894년 조선의 공주 우금치에서는 일본군 1개 대대가 4만의 동학군을 몰살했다.
공식적 제국의 종결만으로 탈식민을 이룰 수 없다. 우리의 문화적ㆍ정신적 구조를 개변시켜야 한다. 아르헨티나는 150년간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해 있었고 홍콩은 최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아르헨티나가 홍콩보다 더 탈식민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식민의식은 가시적인 정치, 군사 면보다 비가시적인 문화, 정신 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진보는 보수 또는 자유주의자들에게 학습에서 밀리고 있다. 이런 유감스러운 현상은 특히 역사와 관련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2018년 7월 3일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 격려사에서 “고종의 특명을 받은 이준 선생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헤이그로 향한 것도, 손기정이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오른 것도,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 파리로 향한 것도 서울역"이라고 말했다.
서울역은 일제 강점기 수도 없이 많은 우국지사들이 북경과 상해, 만주와 연해주를 가기 위해 기차를 탔던 곳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말한 서울역은 공교롭게도 목적지가 모두 유럽으로서 헤이그와 베를린과 파리다. 더구나 마지막에 언급된 나혜석의 여행은 조선총독부가 마련해준 것으로서 조선총독부 외교 관리였던 남편 김우영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이 여행 끝에 파리에 도착한 나혜석은 그곳에 가 있던 친일파 최린을 만나 정을 통했다.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이 나라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다가오는 통일의 시대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대통령이야말로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아랫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수준의 연설문을 써서 올리는 청와대 비서관들도 각성해야 한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이 전제되지 않고는 결코 ‘자주’를 이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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