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세상이 벗의 마음처럼 한결 맑아진다. 밤이라도 푸른 달빛처럼 다가오는 사물들의 영상이 선명해짐을 느낀다. 그렇길래 돋아나고 흩어지던 인연들의 그림자가 마음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오는가 보다. 
가을밤! 최인호선생의 ‘유림’을 펼쳐들고. 밤 깊도록 퇴계 선생을 만났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퇴계 선생님의 슬픈 인연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인들에 대한 그분의 너그러움이 느껴진다. 
퇴계 선생의 첫번째 부인은 아이를 낳다가 산고 때문에 7년만에 세상을 떠났고, 두 번째 부인 권씨는 갑자사화, 기묘사화의 와중에서 풍비박산된 가정에서 자라 정신이 혼미하고 넋이 나가 실성을 하였는데도 그를 끝까지 지켜 준다. 사후에도 선생께서 1년 넘게 부인의 묘를 지켰다고 한다. 
두 아내와 사별한 이후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직하던 열 달 동안 두향이라는 여인과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퇴계 선생이 풍기군수로 떠나면서 두향이라는 여인과 이별을 한다. 
허나 두향은 22년 동안 선생을 그리워하며 수절을 하면서 사모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선생의 제자와 후손들은 두향이라는 여인의 묘를 보살피고 있다 하니 선생의 두향을 향한 고운 마음은 시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 시키는가 보다. 
충북 단양군 강선대 위에 위치한 두향의 묘는 충주댐 건설로 이장되었고, 선생과의 슬픈 인연 때문인지 묘에는 풀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한 번의 인연으로 22년간의 수절을 강요할 수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 자결을 청할 수도 없지만,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로 초혼가를 부르며 강물에 몸을 던진 두향의 사랑에 애잔함이 가슴속을 파고드는 가을이다. 
아픈 인연들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시던 퇴계 선생님! 아픈 인연들을 감싼, 선생의 휴머니즘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선생은 정형화 된 이론보다는 인격의 완성을 추구했다. 
퇴계의 수양론은 심(心)과 경(敬)의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은 수양이 이루어지는 바탕이요, ‘경’은 수양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퇴계의 학문적 관심은 항상 인간의 도덕적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수양론으로 귀결되고 있다. ‘경’이야말로 퇴계 사상의 핵심이며, 퇴계가 존경받는 이유도 이러한 ‘경’의 태도를 한 평생 몸소 실천한 인격자였기 때문이다. 
선생은 운명적인 인연들을 거부하지 않고 사랑 할 줄 아는 휴머니스트였다. 정치도 사랑을 실천하는 ‘경’의 단계다. 영암군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과 군민들 모두가 더 사이좋게 서로의 기를 살려주는 ‘우애론’으로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더 멀리, 더 넓게, 더 크게, 하나된 군민이 될 때 이 가을이 외롭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