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지식인들부터 대오각성해야

[2018년 11월 2일 / 제193호] ‘새 시대의 자주’를 위한 제언 - 4 영암우리신문l승인2018.11.05l수정2018.11.0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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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는 미국을 추종하는 보수를 비웃는다. 하지만 여간해서 유럽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아니 그들은 유럽을 예찬한다. 남북철도가 연결된다고 좋아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들이 말하는 목적지는 십중팔구 파리 아니면 베를린이다.
박근혜가 독일의 메르켈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판한 한국의 진보는 문재인은 메르켈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칭찬한다. 그들에게 유럽인 메르켈은 무엇을 하든지 정당한 기준이 되는 것일까? 과연 미국에 의존하는 보수와 유럽을 선망하는 진보는 다른 것일까? 나는 자주가 상실된 모양주의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서구 제국주의는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에 깊은 현실적 피해를 주고 있다. 여전히 근대 유럽인이 고안한 문명주의와 보편주의는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살상과 파괴를 자행한 서구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의 방식만이 인류 역사 발전의 유일한 길이라는 프로파간다를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이 동조하고 하고 있는 것은 애처로우면서도 희극적인 일이다. 그들의 정신적 근저에는 모양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와 달리 유럽의 학문과 역사를 전공했으면서도 스스로 자기 반성의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들도 적지 않다.
“유럽을 사회발전의 모델로 삼아 변경에서 유럽사를 평생 공부한 필자 같은 사람은 자신의 학문적 생애 자체에 엄청난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근대 학문 자체가 베버나 맑스의 개념들 위에서 구축된 이상, 그리고 이 개념에 따라 학문해 온 이상, 이 개념들 ‘바깥의’ 사유공간을 탐사하는 게 지레 두려울 뿐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뿐이다.”(이민호, ‘세계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유럽중심주의 사관의 극복을 위하여’)
나는 이민호 교수가 학자로서 매우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삶의 만년에 자신이 평생 전공한 유럽 중심 역사학에 대한 성찰의 발언을 했다. 나는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학자적 양심'이고 '용기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위 글은 그가 세상을 뜨기 7년 전인 2002년 <역사비평>에 실린 것이다.
이민호 교수 등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함몰되어 있는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론으로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한국서양사학회) 시리즈를 발간했다. 이 책들은 모양주의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비자주적인 학문 태도를 스스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여전히 교조적인 좌파 지식인들은 자기들의 유럽중심주의를 정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정의당과 민중당 등 ‘진보정당’ 주변에 얼쩡거리며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한국 진보세력의 자주성 성취를 훼방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한국의 보수는 미국중심주의, 한국의 진보는 유럽중심주의에 침윤되어 있다. 그런데 미국중심주의와 유럽중심주의는 다른 것일까? 19세기 유럽 열강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착취하여 축적한 힘을 바탕으로 인도를 잠식하고 중국을 밀어내면서 전 지구적으로 영토 약탈전을 벌였다.
20세기 들어 유럽인들은 급기야 자기들끼리 식민지 쟁탈을 위한 이전투구를 벌였는데 그것이 바로 1차대전이었다. 결과 유럽이 쥐고 있었던 제국주의의 주도권을 미국이 인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미국중심주의와 유럽중심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시인 랭보의 수사를 빌리면 ‘모두가 한 배에서 태어난 개새끼들’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고 유럽중심주의의 일본판 아류인 친일식민사관, 정체사관. 타율사관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 사학계 일부에서 절치부심하여 제시한 ‘자본주의 맹아론’이란 것도 시간과 함께 이면을 드러내게 되자 이것 역시 유럽중심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재생산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게다가 이것은 더욱 불량한 역사관인 식민지근대화론으로 탈선하기까지 했다.
비교역사문화를 연구하는 윤해동 교수는 최근의 저작 <식민주의 역사학과 제국> 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독일 역사학파의 경제발전단계론을 적용하여 조선에 봉건제가 부재했다고 주장하는 식민주의 역사학과 (이에 대한 방어논리로) 마르크스주의의 발전단계론을 적용하여 봉건제가 성립했다고 보았던 백남운(이북 초대 교육상)의 역사학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윤해동 교수는 이 두 역사학이 양극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의) 모호한 경계 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반문한다. 제국주의를 본받으려 한 일본의 유럽사대주의가 먼저 있었다. 그리고 ‘유럽사대주의 + 일본식민주의’에 진지한 연구 없이 저돌적으로 반발했던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나중에 있었다.
우리가 좌우를 떠나 유럽중심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럽중심주의와 ‘자주’는 공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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