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사관은 역사조작, 인종주의, 종교독선의 산물

[2018년 10월 26일 / 192호] ‘새 시대의 자주’를 위한 제언 - 3 영암우리신문l승인2018.10.29l수정2018.10.2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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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서양을 선망, 동경하는 것은 남한 진보의 병통이다. 또한 이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역사를 경멸한다. 모양주의의 문제점은 남의 것을 과대평가하는 데에도 있지만 나의 것을 근거 없이 비하하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저열한 역사의식으로는 새 시대의 ‘자주’를 이룰 수가 없다.
나는 그동안 여러 사례를 겪어 보았다. 영국을 거침없이 ‘대영제국’이라고 호칭하는 진보정당의 전 정책연구원장도 있었고 “맑스를 모르면서 조선역사를 공부하면 국수주의자가 된다”고 하는 교수 출신의 진보정당 당직자도 있었다. “조선은 민중을 착취하기 위해 공무원 수가 엄청 많았다”고 하는 진보정당의 전 대선후보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유럽은 선이고 조선은 악’이라는 터무니없는 이분법이 자리 잡혀 있었다.
남한의 진보를 모양주의자로 만든 것은 유럽중심주의다. 유럽중심주의는 대부분의 근대 유럽 학문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18,9세기 유럽의 군사적 우월이 확실해졌을 때 본격적으로 출현했다. 유럽중심주의가 가장 강력하고 완고하게 나타난 것이 역사학이다. 유럽인들은 유럽문명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역사학을 통해 보여주려 했다. 그렇게 해야 역사 전반을 왜곡, 조작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의 진보는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는다. 옛날에는 직선적으로 진보한다고 하더니 요즘은 달팽이처럼 나선형으로 진보한다고 한다. 아무튼 그들에 의하면 역사의 진보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진보사관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역사관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18세기부터 유럽에서 시작된 진보사관이다. 진보는 시간의 진행에 따라 인간의 정신적, 물질적인 능력이 커지며 결과 인간의 역사는 무한히 발전하여 세상은 좋아진다고 믿는 사고방식이다.
유럽인에 의해 19세기에 다시 만들어진 유럽의 역사는 유럽 지역의 역사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를 중심에서 이끌어가는 보편사의 지위로 격상되었다. 이에 반해 비유럽 세계의 역사는 유럽인에 의해 발견되거나 정복됨으로써만 역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유럽에서 진보사관이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배경이 된 것은 세계의 역학 관계 변화이다. 17, 18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인도나 중국은 아시아의 대제국으로서 유럽 국가들이 감히 힘으로 넘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이후 유럽 국가들은 현대적 무기의 개발로 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 1757년 인도는 플라시 전투로 영국에 벵골 지방을 빼앗기며 식민지로 전락해갔고 중국도 1840년의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유럽 국가들의 연합 침공을 받아 반식민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결과 유럽인들이 아시아의 대제국들에 대해 갖고 있던 동경과 존경심은 모두 사라졌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에 대한 경멸적인 관념을 생산하여 전파함으로써 자신들의 아시아 침략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동원된 것이 종교와 인종주의였다.
유럽인들은 자기들의 유일신이 유럽인의 역사를 진보로 이끈다는 생각에 도취되었다. 그들은 기독교 원리가 다른 종교에 비해 우월하며 더 윤리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 역시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유럽인들은 인종에 따라 사람의 능력에 우열이 있다는 관점에서 역사를 설명하려 했다. 결과 18세기 후반 이론화된 인종주의가 나타났다. 백인종은 황인종이나 흑인종에 비해 우월한 자질을 유전적으로 타고나며, 따라서 더 우월한 문화를 건설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직도 서양의 많은 역사학자들과 남한의 모양주의 지식인들은 내심 이런 편견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유럽인들은 자기들의 문명적 창조능력을 강조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오랜 옛날부터 독특하게 진보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고 했다. 그들은 개인주의, 데모크라시, 사유재산제와 자본주의, 도시의 발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 등이 모두 유럽 고유의 것이며 타 지역에는 이런 것이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거의 다 허구적이다. 또한 이런 담론은 역사의 설명방식으로 볼 때 다분히 비역사적이다. 자기들의 종교와 인종을 기준으로 세계사를 설명하려 하는 것은 아전인수에 불과하다. 유럽인의 문명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는 주장에는 어떠한 증거도 대기가 어렵다. 요컨대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인들이 만들어낸 부도덕한 편견의 산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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