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진보’는 왜 지리멸렬 후진하는가

[2018년 9월 21일 / 제188호] ‘새시대의 자주’를 위한 제언 - 1 영암우리신문l승인2018.09.21l수정2018.09.2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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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한국의 진보세력이 지리멸렬 상태에서 후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주성의 결여에 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자주성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배경은 유럽 중심적 역사인식이다.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인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이다. 다시 말해서 유럽중심 역사인식은 보편적 세계모델이 아닌 ‘특수 모델’이라는 것이다.
정의당과 민중당 등 한국의 진보는 자본주의의 기원을 유럽에서 찾는다. 그런데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원래 그들의 관점이 아니라 유럽인이 만든 관점을 사대주의적으로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기원이 유럽에 있다는 학설은 이미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폐기되기 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이제 ‘버려진 유물’에 지나지 않은데도 유독 한국의 진보만 이것을 신줏단지처럼 받들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근대 유럽문명의 확장은 그것을 ‘보편적 역사인식’, 즉 유럽적 보편주의를 만들고 확산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유럽의 역사는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유럽은 유럽의 역사를 주변보다 우월한 역사로 단정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애초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조작되었다.
특히 1492년 이후의 항해 시대는 유럽제국주의를 확장시켰고, 이후 유럽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확장된 중심’으로 행세하였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유럽 제국주의는 자신을 세계사의 중심으로 위치시키려 하였고 그 역사를 매우 오래된 것처럼 가장했다.
그러나 19세기 이전까지의 유럽사는 세계의 다양한 중심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었다는 것은 이제 정설이 되었다. 사실 동아시아의 유교문명과 중동의 이슬람문명 등은 유럽의 기독교문명을 현저히 앞질러 있었다.
유럽자본주의의 역사는 식민지 확대의 역사와 일치한다. 예컨대 베네치아, 암스테르담, 파리, 런던 등의 도시는 전 유럽 차원의 거대도시로 성장했지만, 원격지무역과 식민지 수탈을 통해 성장한 것이다. 게다가 18세기 초까지 유럽의 어떤 도시도 동아시아의 대도시들보다 작았다.
초기 유럽자본주의의 공격성과 폭력성은 세계자본주의의 발전 모델이 될 수 없다. 유럽자본주의의 성장은 생산보다는 유통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원격지무역과 투기적 시장개척을 통해 원료와 상품을 독점했고, 나아가 폭력적으로 시장을 확대시켰다. 이 같은 폭력적 시장개척은 사회진화론에 의해 미화되었다.
유럽과 비유럽은 문명과 야만으로 대비되었고 이것이 바로 16~18세기 유럽에 의해 만들어진 이른바 ‘근대세계체제’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 역시 공격적이며 독점적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주변을 독점하고 지배함으로써 중심적 지위를 확장시켜가는 특수한 방식이었다. 이처럼 문화적 제국주의는 군사적 제국주의와 ‘쌍궤병행’했던 것이다.
21세기 보편적 세계질서에 대한 구상은 이 같은 독점적, 폭력적 팽창주의의 극복으로부터 모색되어야 한다. 유럽중심의 역사이해 방식은 유럽인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이기에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이로부터 벗어난 지 오래 되었고, 이 단계에서 또 한 차례 동북아를 중심으로 새롭게 개편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진보는 현재의 이전 단계도 아닌 ‘이전의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것이 바로 식민사관, 모양주의 가치관이 아니고 무엇이랴? 식민주의자와 모양주의자들이 ‘진보’의 구각을 쓴 채 아직도 나대고 있으니 그 진보가 자주적일 리가 없다.
진보 분열이 진보 약화의 요인이라는 주장은 공부 안 하는 ‘진보’들이 선거에 패했을 때마다 입에 담는 책임 면피용 정신승리법이다. 이토록 무능한 진보라면 제 아무리 연대와 통합을 이룬들 끝없이 지리멸렬 후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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