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조선의 영조(재위 1724 ~ 1776)는 아들을 죽인 국왕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패륜적 행위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는 조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코사크 족의 대장 불바도 부족을 배반한 아들을 제 손으로 죽였다.
영조는 재위 25년에 아들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는 짓만 골라서 하다시피 했다. 나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폐하기로 결정한 심정이나 태종 이방원이 세자 양녕대군을 폐하기로 결정한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영조는 아들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과연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것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영조의 치적 중 하나인 탕평책은 공정성이라는 의리에 기반 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자기 세력에게는 지나치게 우호적이고 반대 세력에게는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다. 
이에 따라 영조는 사도세자의 군왕 자질을 불신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와중에 사도세자 본인이 겪은 정신적 압박 또한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세손(정조)이 태어났다. 사도세자의 아들 세손은 강학에서 뛰어난 자질을 보이며 성장해 나갔다. 그런데 후계 구도에 대안이 생겼다는 것은 세자의 위치가 더욱 위협 받는 상황으로 악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오히려 역반응을 보였다. 그는 태종 앞의 양녕대군이 그랬던 것처럼 타이르는 아버지 면전에서 속된 말로 ‘개기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영조가 무고한 궁인을 죽인 사도세자를 불러 전말을 물은 일이 있다.
“어찌하여 그런 일을 했느냐?
“속이 상해서 그랬습니다.
“왜 속이 상한 거냐?
“아버지가 날 사랑하지 않아서 서럽고, 꾸중만 하시기에 무서워서 그렇습니다.”(혜경궁 홍씨, <한중록>)
급기야 사도세자는 정신질환을 얻게 되었고 통제할 수 없는 울화증을 앓게 되었다. 이 증세는 주변의 나인과 환관들에게 제멋대로 표출되었다. 사도세자는 각종 변태적인 유희에 빠져들었고 환관을 죽이는가 하면, 자신의 비행을 간언하는 후궁까지 죽였다. 환관과 후궁은 엄연히 공직자들이고 특히 후궁은 정 2품의 품계이다.
보편적 윤리로 보아 이만 하면 사형감이다. 더구나 사도세자를 살려두었을 때 세손의 목숨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 형국이었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뒤주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한 것은 스스로 자진(自盡)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들을 죽이는 것은 아들을 살리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조의 조치에는 불가해한 수준의 공익정신이 발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은 ‘의리’의 논리 외에는 그 어떤 분석도 설득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난세의 의리 지키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정하고도 비정상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것은 비극적인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이에 따라 여기에서는 엽기와 공포가 탄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