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한때는 애완(愛玩)동물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반려(伴侶)동물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애완’이란 귀여워하고 즐긴다는 뜻이고, ‘반려’란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이다. 애완의 애(愛)는 ‘사랑 애’ 자이다. 그리고 반려란 사람이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먼저 나는 동물을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는 ‘애완’에 반대한다. 아니, 반대한다기보다는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동물을 사람처럼 간주하는 ‘반려’에는 짜증이 돋는다. 어디까지나 동물은 동물이고 사람은 사람이겠기 때문이다.
몰인정하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또 내가 권위적(동물에게)이라는 말을 들어도 괘념치 않는다. 나는 애완이나 반려라고 하며 동물을 끼고 사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인간소외’를 겪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사실 동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만큼 이율배반적인 게 없다.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일이다. 온 가족이 식탁에서 치킨을 먹던 중이었는데 둘째(4~5세)가,
“아빠, 치킨은 닭을 죽여서 만든 거지요?”
순간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아이의 부모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첫째(6~7세)가 끼어들었다.
“먹으려면 할 수 없어”
그리하여 일가족은 다시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것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다가 참으로 흐뭇한 대목이 있어서 소개한다.
1411년 태종 11년 2월 22일 자에, 일본 국왕 원의지가 조선에는 없는 코끼리를 바치니 사복시(말과 목축을 관장하는 관서)에서 기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다음 해에 일이 생겼다.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이우(李瑀)라는 사람이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자주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인 것이다.
병조판서 유정현이 진언하기를,
“일본 나라에서 바친 바, 길들인 코끼리는 이미 성상의 완호(玩好)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사람이 다쳤는데,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사람을 죽인 것은 죽이는 것으로 마땅합니다. 또 일 년에 먹이는 꼴은 콩이 거의 수백 석에 이르니, 청컨대, 주공(周公)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고사를 본받아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두소서.”
그러자 태종은 ‘웃으면서’ 그대로 따랐다. 여기서 태종이 왜 웃었는지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병조판서의 진언은 코끼리를 이른바 ‘유배 보내자’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섬으로 유배 간 코끼리는 전라도에서 사육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그동안 코끼리를 길들여 가며 순천부 장도(獐島)에 방목 중인데, 수초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하여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이에 태종은 코끼리를 불쌍히 여겨 육지 귀환령을 내렸다.
코끼리가 조선에 온 지 어언 10년째,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1420년의 일이다. 전라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코끼리란 것이 쓸 데에 유익되는 점이 없거늘, 지금 도내 네 곳의 변방 지방관에게 명하여 돌려가면서 먹여 기르라 하였으니, 폐해가 적지 않고, 도내 백성들만 괴로움을 받게 되니, 청컨대 충청·경상도까지 아울러 명하여 돌아가면서 기르도록 하게 하소서.”
코끼리로 인한 부담을 전라도만 지는 것은 불공평하니 공평하게 다른 도에서도 나눠 기르자는 (나름 합리적인) 청원에 상왕 태종은 그대로 따랐다.
이번에는 코끼리를 새로 맡아 기르게 된 충청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공주에 코끼리를 기르는 종이 코끼리에 채여서 죽었습니다. 그것이 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고, 먹이는 꼴과 콩이 다른 짐승보다 열 갑절이나 되어, 하루에 쌀 2말, 콩 1말 씩이온 즉, 1년에 소비되는 쌀이 48섬이며, 콩이 24섬입니다. 화를 내면 사람을 해치니,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되니, 바다 섬 가운데 있는 목장에 내놓으소서.”
또다시 코끼리를 유배 보내자는 주장이었다. 태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가려서 이를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
이 팔자가 기구한 코끼리에 관한 기록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태종의 지침대로 물과 풀이 좋은 곳에서 살다가 자연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싶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의 문제이고, 우리는 태종에게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