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꿩은 색색가지 깃털이 있어서 ‘화충’(華虫)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사람을 멀리하여 들에 떨어진 곡식을 주워 먹으며 산다. 어느 날 장끼(수꿩)는 가족을 데리고 들로 나갔다. 아들 아홉, 딸 열둘을 앞세우고 들에 나간 장끼는 눈밭에 붉은 콩 하나가 놓인 것을 발견한다. 장끼가 콩을 먹으려고 하자, 까투리(암꿩)가 나서며 눈밭에 사람의 흔적이 있으니 수상하다며 먹지 말라고 한다.
장끼 : 동지섣달 추운 날씨 쌓인 눈에 사람의 자취가 있을 리 없다.
까투리 : 간밤에 꿈이 불길했다. 
장끼 : 하하. 나는 학을 타고 옥황상제께 문안한 후 산림처사가 되고 콩 한 섬을 받는 꿈을 꾸었다.
까투리 : 나는 북망산에 비 내리고 쌍무지개가 칼이 되어 당신의 머리를 베는 꿈을 꾸었다.
장끼 : 그것은 내가 장원이 되어 어사화 두 가지를 머리에 꽂고 장안대로를 왕래할 꿈이다.
까투리 : 삼경에는 무쇠 가마솥에 당신이 빠지고 나는 그 옆에서 통곡하는 꿈을 꾸었다. 
장끼 : 그것은 다른 남자를 만나 결박당해 조리돌림을 당하고 난장 맞을 꿈이다.
까투리 : 군자의 본을 받아 염치를 알 것이니 백이숙제나 장자방을 본받아 근신을 하려면 콩을 먹지 말라.
장끼 : 무식하다. 안자, 백이숙제, 장량의 경우를 보건대 먹는 것이 으뜸이고 후한의 광무제와 한신은 크게 된 인물이니 나도 콩을 먹고 크게 될지 모른다.
까투리 : 진시황, 초패왕, 굴원 등이 고집으로 망했으니 고집이 지나치면 목숨을 그르칠 수 있다.
장끼 : 콩 태자[太] 들어간 사람은 오래 살고 귀하게 되었다. 태곳적 천황씨, 태호복희씨, 한태조, 당태종, 강태공, 이태백, 태을성 등이다.
끝내 장끼는 콩을 먹다 덫에 걸렸다.
까투리 : 남자가 여자의 말을 잘 들어도 문제고 너무 안 들어도 패가망신한다더니....
장끼 : 나의 맥이나 짚어 보라. 그리고 나의 눈망울이 온전한지 살펴보라.
까투리 : 정상이 아니다. 
장끼 : 남편 잃을 여자에게 장가를 든 내가 잘못이다. 나 죽거든 수절하여 정렬부인이 되어라.
장끼는 이런 말을 남기고 죽었다. 까투리는 장끼의 남은 털을 가지고 장례를 치르는데 두루미, 제비, 앵무새, 따오기 등이 참여했고 따오기가 축문을 읽었다. 장례식에는 여러 새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까마귀 : 우리 백년동락하자.
까투리 : 삼년상도 지내지 못하였다.
까마귀 : 너 같은 미물에게 수절이 당치도 않다.
물오리 : 일곱 번 상처하고 후처를 구하고 있다.
까투리 : 혼인을 하자면서 궁합도 보지 않고 억지 혼인을 하려느냐?
물오리 : 택일을 하겠다. 나와 함께 물에서 사는 것이 최고다.
까투리 : 나는 물이 싫다. 뭍에서 사는 생활이 좋다.
그때 조문을 왔던 장끼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선다.
장끼 : 홀아비 된 지 3년이 되었는데, 둘이 짝을 지어 살자.
까투리 : 죽은 낭군을 생각하면 개가하기 어렵지만 중늙은이인 나는 수절할 마음이 없고 음란한 마음이 발동한다. 유유상종이니 당신 말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
까투리는 장끼를 앞세우고 아들 아홉, 딸 열둘을 뒤에 거느리고 숲속으로 들어가 이듬해 봄 아들딸을 다 결혼시키고 노닐다가 부부가 큰물에 들어가 조개가 되었다.
이상은 조선 후기의 우화소설 <<장끼전>>을 요약한 것이다. 여기서 까투리 말고는 모두 남자들이다. 까투리의 남편 장끼는 시종일관 고집이 세고 자기본위이며 아내를 깔본다. 그는 아내 말을 듣지 않고 콩을 먹고 죽어가면서도 과부될 여자에게 장가 든 내가 잘못이라고 하면서 책임을 여자에게 전가한다. 그러면서도 꼴에 아내한테 재가하지 말라고 유언까지 했다.
다음으로는 다른 남성들이 등장한다. 프로포즈 했다가 거절당하자 갑자기 여자에게 멸시의 폭언을 퍼붓는 까마귀, 상대의 의사를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나와 혼인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결혼하자고 윽박지르는 물오리 등에서 우리는 남성들의 행태를 읽는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반면 까투리는 얼마나 합리적이고 주체적인가? 그녀는 남편의 유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유언이 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프로포즈 하는 또 하나의 장끼는 매우 진솔해 보인다. 이에 화답하여 주체적으로 재혼을 결정하는 까투리의 모습은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진솔한 돌싱남과 주체적인 돌싱녀의 만남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