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차라리 사대부에게 죄를 얻을지언정 천주에게 죄를 얻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집안에 땅을 파고 신주를 묻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 앞에 술잔을 올리고 음식을 올리는 것도 천주교에서 금지하는 것입니다.”(윤지충의 말, 정조실록 11월 7일 1791년)
윤지충은 전라도 진산 출생으로 25세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서울에 와서 외사촌 정약용의 가르침에 따라 천주교를 믿고 영세를 받았다. 그 뒤 천주교에 대한 단속이 가해지자 시골집에 숨어 신주(神主)를 불사르고 신앙을 지켰다.
윤지충은 어머니 권씨가 별세하자 장사를 지낼 때 천주교 교리에 따라 혼백의 위패를 만들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그는 불효ㆍ불충ㆍ악덕의 죄로 처형되었다. 이로써 그는 조선 천주교 사상 최초의 조선인 순교자가 되었다.
당시 조선의 법률 역할을 하던 <대명률>에는 ‘부조(父祖)의 신주를 훼손한 자는 시신을 훼손한 법률과 비례한다. 자손이 조부모나 부모의 시신을 훼손하고 버린 경우에는 참수하되, 두 죄가 함께 발생한 때에는 무거운 쪽으로 논죄한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갈릴레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하늘의 움직임이 바티칸의 교리와 상충된다는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기구인 망원경을 유포시켜 사제들을 난처하게 만듦으로써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반면 부르노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는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행성들이 존재하며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결국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내쫓았기 때문에 로마의 저잣거리에서 화형을 당했다.
로마 교황청은 1992년 갈릴레오의 명예를 회복시키면서 350년 만에 공식적으로 사과했지만, 갈릴레오보다 덜 유명한 브르노의 명예는 400년이 지나도록 아직 회복시키지 않고 있다.
바비도는 1410년 이단으로 지목되어 사형 당한 영국의 한 재봉직공이다. 그는 영역(英譯) 복음서를 비밀리에 읽은 혐의로 스미드피일드 광장에서 타오르는 장작더미의 화염 속에서 죽어갔다.
조선에는 또 황사영(1775 ~ 1801)이 있었다. 그는 정약용의 조카사위로 1790년 사마시에 합격, 진사가 되고 처가의 인도로 천주교도가 되었다. 1794년 한국에 온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지도하는 명도회에 가입, 교리를 공부하였다. 그는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제천의 산중에 피신, 토굴 속에서 이른바 ‘백서’를 작성하였다.
“죄인 황사영은 사족(士族)으로서 사술에 미혹됨이 가장 심한 자였는데, 의금부에서 체포하려 하자 성명을 바꾸고 토굴에 숨어서 백서(帛書)를 썼다. 장차 북경의 천주당에 통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는 서양국에 통하여 큰 선박 수백 척에 정병 5, 6만 명을 꾸며 보내고 대포 등 병기를 많이 싣고 와서 우리나라를 깜짝 놀라게 하여 사교가 행해지도록 함이었다.”(순조실록,10월 5일, 1801년)
황사영의 행위는 오늘의 형법으로도 여적죄에 해당한다. 여적죄는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함으로써 성립되는 범죄(형법 제93조)이며 형량이 사형이다.
조선의 천주교 탄압이 부당하고 가혹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먼저 우리는 사교나 이교에 대한 탄압은 문명국가라면 어느 나라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선의 종교 탄압은 서양에 비해 현저히 약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조는 초기 천주교에 대해 대단히 포용적이었다. 윤지충이나 황사영 같은 사람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윤지충의 외사촌이자 황사영의 처숙인 정약용도 사형 당하지 않고 유배형에 그쳤다. 만약 그 시대에 조선인이 이탈리아나 영국에 가서 십자가나 바이블을 불태우고 성모상을 파괴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