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우 용 희

지난달 30일 서울대에서 윤리 과목 중간고사 중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부정행위(커닝)를 저지른 일이 있어 연일 화제다. 이러한 논란은 곧 양심에 대한 논쟁으로 옮겨붙고 있지만, 서울대학교는 부정행위와 관련해 엄중 문책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며 서둘러 덮으려고만 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항상 이런 식의 결론으로는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 서울대 내에서 벌어진 시험 부정행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몇 해 전에도 서울대 의예과 학생들이 집단 부정행위를 저질러 동일 답안을 작성한 32명이 F학점을 받고 징계를 받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문제는 F학점과 솜방망이 징계,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징계가 있었던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근본적인 변화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서울대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부산에서는 부산대를 비롯한 4개 대학 ROTC(학군단)의 한자자격시험에서 조직적인 대규모 부정행위가 있었다. 여기에는 시험주관업체인 대한검정회 직원까지 결탁해 수억 원의 금품까지 주고받으며 부정행위를 했었다고 한다. 결국 군 장교가 되겠다는 이들은 부정행위로 인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됐다고 한다.
이렇듯 비일비재한 부정행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지 않는한 추후 기득권 세력의 부정부패에 무덤덤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서울대 윤리 강사의 시도가 더욱 관심을 끌었다.
‘성의 철학과 성윤리’로 인간의 본성을 성찰함을 배우는 과목에서 발생한 부정행위. 강사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는 “고민끝에 끝까지 여러분을 믿고 싶은 선생으로서 새로운 제안을 하겠다”며 “자신들의 과오를 스스로 시정할 기회를 주겠다”고 운을 떼며 재시험 공지를 한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조금이라도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만 재시험에 마스크를 쓰고 나오라’, ‘제출했던 시험지를 되찾아 부정행위를 하지 않은 내용만 새로운 시험지에 옮겨 적어 조교에게 제출하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 주겠다는 것이다. 대형 강의라 부정행위한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조교는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혹시모를 익명성 보장까지 철저히 약속했다.
해당 강사는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부정행위를 했던 학생들도 내게는 소중한 제자”라면서 “누구나 한때 실수를 할 수 있고, 그것을 깨우치고 다시 바른 길을 간다면 적어도 나는 용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려워하지 말고 시험지를 고치는 것이 여러분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이며 제대로 시험을 본 학우들에게 가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이 강사의 선택이 옳은 결정이었을지, 또는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 시험장에 있었던 250여 명의 학생 중 단 몇 사람만이라도 강사의 의도를 존중하고 따를 수 있게 되었다면 최소한 그의 선택은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각박하고 극단적인 경쟁 사회에서 비겁·비양심을 저질러서라도 승리한 사람이 성공한 것이 아님을 가르치고, 진심으로 인간의 본성을 성찰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고 보인다.
이러한 작은 시도마저 기다려주지 않고, 논란이 커지자 덮기에 급급했던 서울대학교의 결정은 ‘다람쥐 쳇 바퀴 돌 듯’ 마냥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변화를 거부한다면 결과는 늘 같거나 퇴보하게 된다. 그 변화에 대한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선택을 받아 안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