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역사에는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상(商) 왕조(B.C 16 - B.C11)의 마지막 왕 주(紂)를 들 수 있다. 
원래 국호가 상(商)인 이 나라는 최근까지 은(殷)으로 불렸는데, 그것은 상을 멸망시킨 주(周)나라 사람들이 상나라를 격하시켜 수도 이름인 은으로 부르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동서고금에 피정복국을 격하시키지 않는 정복국은 없다.
상의 마지막 임금 주는 고사성어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주인공이다. 주지육림은 ‘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호화롭고 사치스런 주연(酒宴)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는 주지육림에서 당대 최고 미인 달기를 데리고 논(?)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소문일 따름이다. 우리는 백제 의자왕의 삼천궁녀 이야기를 알고 있다. 또한 공민왕의 엽기적 행각에 대해서도 주워들은 게 조금 있다.
역사 기술에는 조작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조작되지 않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망한 나라의 마지막 군주는 처절할 정도로 격하된다. 이것은 흥한 나라의 첫 군주가 황당할 정도로 격상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놀랍게도 주(紂)는 인류 최선의 역사가 사마천에 의해서는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주는 ‘사리를 명료히 분변하는 자질을 타고난’ 인물이고, ‘판단이 민첩하고 보고 듣는 것이 신속한 장사’이다. 우리는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 죽은 백이와 숙제 이야기를 알고 있다. 백이와 숙제는 조선의 성삼문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지조의 화신이라고 할 수도 있는 백이·숙제가 끝까지 지키려 한 임금이 누구였던가? 그게 바로 상나라의 주 임금이다. 
백이와 숙제는 상나라를 침공하러 가는 주(周)의 무왕에게 “인을 저버리면 안 된다”며 말고삐를 잡고 하소연하다가 주 무왕이 끝내 거부하자 인생을 포기하고 수양산 입산을 단행한 것이었다.
아무튼 무왕은 상나라의 주(紂)를 무너뜨리고 주(周)를 건국한다. 이때 만들어진 그럴듯한 말이 ‘역성혁명(易性革命)’이라는 용어다. 왕조를 뒤집는 데 피를 흘리지 않고 성(性)만을 바꾸었다(易) 해서 지어진 말이다. 이 말을 가장 요긴하게 가져다 쓴 인물이 이성계이다. 그래서 조선건국예찬가인 <용비어천가>에서는 이성계가 무왕에 비견(고성동부, 古聖同符)되는 것이다.
주 무왕은 곧장 상나라와 주(紂) 임금에 대한 격하 작업에 들어간다. 오늘날 발굴되고 있는 상나라의 갑골문이나 방대한 양의 청동 제기들은 이 까마득한 고대국의 문화가 매우 높은 수준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이런 상나라의 섬세하고 찬란했던 문화가 유치하고 초라한 것으로 왜곡 홍보되었다.
아울러 상의 마지막 군주 주는 음탕한 폭군으로 흑색선전되었다. 주지육림이라는 말도 이때 지어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주는 아름다운 여인 달기와 순수하고 화사한 사랑을 나누었을 수도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망한 나라라고 해서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망한 나라라고 해서, 특히 그 문화까지를 매도해 버리는 작태는 고쳐져야 한다. 한국인은 이런 경향이 심하다. 계몽주의 지식인이나 근대화주의자나 기독교인의 일부는 근대에 망한 조선을 아예 백안시한다. 이는 이성적이지 않을 뿐더러 실리적이지도 않다.
조선이 망한 원인을 내재적으로 짚어본다면 세도정치와 일당독재 때문이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 대원군과 고종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교활하고 폭력적인 외세의 침탈은 조선의 내부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못난 군주로 알고 있는 고종은 의외로 미덕이 많은 인물이었다. 나는 고종이 때를 잘 만나 태어났더라면 괜찮은 군주로 기록될 수 있었다고 본다. 고종을 모멸의 대상으로 왜곡, 격하시킨 것, 그게 바로 식민사관이다.
이것은 비단 나라에 관해서만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영달한 사람은 기껏 상찬되고 낙백한 사람은 으레 폄하되는 풍조는 무지한 사람들의 나약성과 기회주의 속성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상 패망한 군주를 함부로 매도하지 말자. 역사 기술에는 ‘패망한 군주는 무조건 모멸해야 한다’는 비역사적인 불문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