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원마산마을에서 사는 박진주씨는 음력 7월 3일인 지난 24일, 부친의 제사를 모시러 다녀왔다.
8월 24일. 우연치 않게 올해 부친 기일은 바로 그 날이었다.

강제징용자 귀국선 우키시마 호 폭침
박진주씨의 부친 故박신우씨는 72년 전인 1945년 8월 24일, 귀국선 우키시마 호 폭침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많지 않은 생환자 중 한 명이었다.
미국·소련·중국·영국 등의 연합국에 맞서 태평양 지역 패권을 노리며 침략전쟁을 벌렸던 일본제국주의. 당시 삼호읍 산호리 중촌마을의 故박신우씨를 비롯한 많은 청년들이 강제 징용됐다.
사망자만 20~30만명으로 추산되는 미국의 히로시마·나가사키 핵폭탄 투하로 일왕이 항복을 선언했고, 강제 징용되었던 故박신우씨 등은 1945년 8월 22일 마침내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귀향의 부푼 기대와 함께 조선인 8000여명 이상을 태운 귀국선 우키시마 호는 일본 북동부 오미나토 항을 떠나 광복을 맞은 조국으로 향했다. 부산으로 향하던 우키시마 호는 출항 3일째인 8월 24일, 연료가 떨어졌다며 인근 마이즈루 항으로 기항하는 중에 갑작스런 폭발과 함께 침몰했다.
당시 일본은 미군이 매설한 기뢰에 의해 침몰했으며 조선인 3725명, 일본해군 승무원 255명이 탑승했고 조선인 524명, 일본해군 25명 등 549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생존자와 학계에서는 승선인원이 8000명 이상이고 5000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우키시마 호에 폭발물이 실려 있었고 물과 기름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승무원들이 먼저 탈출한 점 등을 이유로 일본이 고의적으로 폭파했다고 주장해왔다.
박진주씨는 부친 故박신우씨의 생전 증언으로 “생사의 고비에서 부친은 7~8000구 이상의 시신을 헤치며 삼호읍 나불리의 양담을씨와 함께 죽을힘을 다해 헤엄쳤고 다행히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단지,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살아 돌아왔기에 ‘보상도 없어’
힘들게 추스린 몸을 이끌고 고향에 돌아왔고 근근히 농사일을 하며 가정을 살폈지만, 참혹하고 억울했던 과거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더군다나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적극 추진하던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됐고, 국가배상권을 내주고 받은 3억 달러의 원조금 일부로 광복 이전 피해자에게만 보상해 우키시마 호 폭침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좌절을 안겼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가 처음 시작됐던 1992년. 우키시마 호 희생자와 유족들도 마침내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및 공식 사과 요구 소송을 제기했다.
박진주씨도 연로한 부친 故박신우씨를 모시고 수요집회에 참가하며 진상규명, 일본의 사죄, 피해 보상 등을 외치고 돌아오길 반복했다고 한다. 정부와 대통령, 정치인들, 그리고 한일협정의 수혜를 독식한 기업들마저 사회적 책임에는 뒷전이었기에,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집회를 이어가며 국제사회의 이슈로 만들어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던 중, 아무런 성과도 보지 못한 채 故박신우씨는 2000년 세상과 작별했다.
일본 법원에 제기했던 소송 역시, 2001년 배상 판결을 얻어냈지만 2003년 오사카 고등재판소에서 번복되며 패소하고 말았다.
우키시마 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산정해 2010년 지급됐다. 하지만 그마저도 희생자에 대해서만 2000만원의 위로금이 지급되었다.
살아서 고향에 돌아왔던 故박신우씨 유족들은 위로금마저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며 유야무야되던 진상규명위원회가 2015년 문을 닫았고, 故박신우씨의 유족들에겐 희망의 창구마저 닫혀 버렸다.

시민단체만 고군분투…정부가 나서야
박진주씨는 故박신우씨의 둘째 아들로 부친의 한(恨)을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함께 활동해왔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2001년 박진주씨는 군서면 원마산마을로 이사를 왔다. 중고타이어를 수선하는 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박진주씨는 요즘 수입이 시원찮아 걱정이다.
올해는 하필 우키시마 호가 폭침된 8월 24일이 부친의 기일이라 생각이 더 많아졌다.
“폭침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국가에서…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이 좀 나서야 뭔가 해결될 것인데…”
긴 한숨과 함께 지난 시절의 정부와 국회의원, 기업들에 대한 불신을 한 가득 토해낸다.
박진주씨는 “그나마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고군분투하고 도움을 주시는데 너무 감사하다”면서 “우리 국민 수천명이 희생된 우키시마 호 폭침사건 역시 특별히 관심있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모를텐데…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72년이 지난 2017년 8월 24일. 아직까지 우키시마 호 폭침 사건의 진상규명이나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그 후손들의 삶도 좀처럼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우키시마 호 참사에 대한 진상조사가 끝났다는 정부의 책임있는 후속 조치가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