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웅컬렉션을 대표하는 한 가지 장르를 꼽으라면 한국인이 그린 추상화이다. 하정웅 씨는 추상미술 작가들과 직접 교우하며 작품을 수집해왔다. 그들의 작업실에 직접 가서 작품을 보거나, 도쿄의 화랑에서 열리는 한국의 추상미술 전시회를 찾았다. 그에게 한국의 추상미술은 서양과 다른 고유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고, 재료와 표현에 있어서도 동양의 미학을 꿰뚫었다.
당시 사람들이 외면했던 한국의 추상 1세대 작가들의 작품과 재일 한국인 작가들의 추상작품을 다양하고 폭넓게 수집했다. 지금 그 작품들은 ‘단색화’라는 장르의 추상미술로 재평가를 받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재일작가의 추상화로 구성했다.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박서보, 하종현, 정창섭, 정상화, 문신의 작품과 한국화에서 추상을 모색한 서세옥, 이규선의 작품이 선보인다.
그리고 재일 작가인 이우환, 곽인식, 손아유 작품을 전시한다. 이우환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다.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은 그가 그린 다양한 화풍의 작품들은 소장하고 있어, 작품의 시기적 변화를 볼 수 있다. 곽인식의 작품은 투명한 색상 겹겹이 찍은 타원형의 복합적 구성을 보여준다. 일본 재일교포 2세 작가인 손아유는 선과 색, 생성과 소멸이라는 미술과 삶의 근원적 물음을 화폭에 담았다.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10월 8일까지 전시될 이번 전시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미술과 함께 현대미술을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Work82-1 (곽인식)

곽인식 - 종이를 통한 색채와 감각의 실현
경북 대구에서 출생한 곽인식은 일본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미술대학) 졸업해 일본 독립미술협회전, 이과회전에 표현주의 경향의 작품을 출품했다. 1960년대부터는 평면적인 작업보다는 깨진 유리, 돌, 나무, 철판, 점토와 같은 물질을 화면에 부착해 그 자체의 조형적 구성을 나타내는 작품을 선보였다. 물질적 형상추구 작품을 추구한 그는 모노파(物派)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전통적인 일본종이 화지(和紙)에, 작은 타원형으로 단순화 시킨 일정형태의 맑고 투명한 색상 이미지를 유동적이고 복합적인 구성으로 전개시키는, 동양적 신비감의 평면회화를 창출했다.

▲ 바람으로부터 (이우환)

이우환 - 여백의 예술의 정수
이우환이 스스로 ‘여백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그의 작품은 ‘점’, ‘선’, ‘바람’, ‘조응’, ‘대화’로 구분된다. 그 중 미술관 소장품에는 ‘선’, ‘바람’, ‘대화’이 소장되어 있다. 하정웅 선생의 첫 이우환 컬렉션작품이기도 한 ‘선으로부터’는 점으로부터 다음으로 시작된 두 번째 연작이다. 이 작품은 절제되고 엄격한 추상의 모습과 서예의 일획을 보여주는 동양적인 미감이 나타난다. 1980년대를 지나면 ‘바람으로부터’라는 작품연작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 그의 선은 유연하고 생기 넘치는 자유롭게 표현된다.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넓은 붓을 사용하여 제작된 그의 ‘대화(다이얼로그)’는 하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관람자가 캔버스 안에서 넓게 그려진 점을 보고 있으면 작품과 관람자, 그리고 그것을 그린 작가 서로 합일하여 대화하고 있는 듯하다.
 

▲ 공간의 표리 (손아유)

손아유 - 색의 위치에서 자립하는 색으로
일본 오사카 소네자기(曾根崎)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난 손아유의 예술세계는 흰 바탕 위에 선과 색채의 종합적이고 완전한 융합이다. 백색은 무한을 상징하며 거기에 입힌 색은 다시 백색의 무한으로 확산되어간다. 흰 바탕위의 선은 모여서 쌓이고, 흩어지는 시간 속에 그 형태가 짜였다. 작가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현상을 회화라는 존재 속에 나타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한없이 빛나는 색은 색으로써 무한히 펼쳐져 모든 사물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켰다.


 

▲ Work (정상화)

정상화 - 하나인 듯 미세하게 풍부한 단색채 회화
정상화의 작품은 노동의 결과물이다. 그는 작품을 시작할 때 캔버스에 고령토를 바르고 캔버스 뒷면에 격자로 칼집을 낸 다음, 아크릴 물감을 메어가는 과정이 반복된다. 떼어내기와 메우기라는 과정은 행위의 반복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과정은 우리 미술관의 작품인 ‘Work’시리즈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품은 목판을 조각칼로 때는 행위를 반복하여 만들어졌다. 그리고 행위의 결과물인 목판을 먹색과 청색으로 찍어냈다. 행위의 반복은 우리 일상의 반복같이 느껴지고 작품 제목처럼 작가의 노동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