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식민사관은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근대화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간주한다. 식민사관론자들은 조선사회는 여전히 농업사회였기 때문에 상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적인 환경이 전혀 조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다.
우리가 조선 후기라고 부르는 시기에 서양에서는 근대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다른 경제 제도와 구별되는 특징은 ‘자본 – 임금노동’ 관계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식민사관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당대 조선사회는 자본 – 임금노동의 관계가 다양한 부문에서 활발히 나타나고 있었다.
먼저 화폐 재산이 축적되어 자본으로 전화하는 현상은 18세기 ‘도고상업’이라고 불렸던 독점적 매점상업에서 나타났다. 대표적인 매점상업은 경강상인, 개성상인, 의주상인 등이었다. 이들 대상인(大商人)들은 상업과 공업을 연결시켜 장악했다.
조선의 대표적인 생산물은 종이, 자기, 인삼 등이었다. 게다가 조선사회는 이미 17세기부터 대외무역의 규모도 대폭 확대되었고 금속화폐도 널리 유통되었다. 날이 갈수록 상업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전화되고 있었다. 문제는 세도정권과 결탁한 대상인들의 독점에 있었다. 세도정권은 끝없는 규제완화 조치로 대상인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쳤다.
1811년 발발한 이른바 ‘홍경래의 난’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평안도 지역차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중소상공인이 ‘세도정권 – 독점 대상인’의 결탁 체제를 무력으로 무너뜨리려고 봉기한 항쟁이었다. 홍경래의 난은 봉기를 주도한 우군칙, 이희저, 김창시 등 대부분의 지휘요원이 상인 출신이었다.
그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고 초전에는 승기를 타기도 했지만 결국 열세를 면치 못하고 정주성에 고립되어 100여 일 동안 농성전을 벌이다 관군에게 패멸했다. 이 항쟁에서 관련자 1,917명이 전원 처형당한 것은 당대의 세도정권이 이전의 정권에 비해 얼마나 잔학무도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1833년 서울에서 일어난 ‘쌀 폭동’은 대상인인 경강상인의 독점 농간에 대하여 미곡을 구매하려고 한 도시 빈민들이 벌인 저항이었다. 도시 빈민들은 싸전을 부수고 불을 질렀다. 나아가 경강 연변에 미곡을 쌓아둔 집 열다섯 호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세도정권은 농간을 부린 사람 두 명을 잡아 처벌하는 식의 흉내만 내는 미봉적인 조치를 취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세도정권이 끝내 대상인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대상인들과 깊이 유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구조가 크게 변화했는데도 세도정권은 국가재정을 상공업에서 얻으려 하지 않았다. 권력자들은 대상인들과 결탁하여 그들로부터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대신 조세의 대부분은 여전히 농민들에게 지웠다. 1862년 발발한 ‘임술농민항쟁’은 세도정권의 세정 문란에 항거하여 진주에서 먼저 시작되어 삼남을 거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처럼 19세기 조선에서는 세 차례의 대형 항쟁이 20~30년 간격으로 있었다. 이것은 앞에서 보았듯이 중소상공인들의 항쟁, 도시빈민들의 항쟁 그리고 농민들의 항쟁이었다. 그러나 이 세 항쟁은 모두 실패했다. 이후 외세의 침탈로 인해 조선은 강요된 개항을 거쳐 최후의 농민항쟁이었던 동학항쟁마저 실패하여 망국의 길로 치닫게 되었다.
1948년에 건국한 대한민국에도 항쟁이 잇따라 발발했다. 1960년 4.19 항쟁과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 6.10 항쟁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2016년 11.12 항쟁이다. 지금은 실로 중차대한 시간이 아닐 수가 없다. 항쟁의 실패가 거듭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조선 후기의 역사에서 똑똑히 배울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