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기묘사화(1519)는 국왕과 일부 대신이 일련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던 신진 청요직 관원들을 숙청한 사건이었다.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필두에는 각각 중종과 조광조가 있었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정확하지 못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 사건을 단순히 ‘훈구 대 사림’ 또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으로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기묘사화를 아주 간명하게 정의한다면 ‘개혁이 좌절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오늘의 우리에게 심각한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왜냐하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묘사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어렵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깊은 사색을 요구하며, 이 사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값질 것이다. 기묘사화는 ‘개혁은 언제나 도덕적인 행위인지’,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자격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개혁세력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 개혁의 핵심에 관한 것을 사색해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당대 조광조를 비롯한 기묘사화의 피화자들을 ‘기묘사림’이라고 부른다. 일단 조선 역사에서 ‘사림’이라는 말에는 상당한 프리미엄이 주어져 있다. 즉 사림에는 ‘도덕적이고 학문적인 비주류’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기묘사림이 정말 ‘도덕적이고 학문적인 비주류’였는지는 재고가 필요하다. 그 집단 대표적인 인물들의 성분은 우리의 통념과는 많이 다르다. 그들 28명 중 23명(82%)이 기존의 유력 가문 출신이었고, 21명(75%)은 지방이 아닌 기호(畿湖) 출신이었다. 조광조는 조선 개국공신 조온의 4대손으로 한양 출신이다. 이런 사실들은 그들을 ‘사림’이라고 규정하는 통념상의 전제가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1515년 중종 10년, 조광조는 34세에 조정에 등장하여 조선 역사에서 유례없이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 그는 누적된 여러 현안을 급진적으로 개혁해 나가다가 불과 4년 만인 1519년 하루아침에 숙청되어 사사되었다. 그가 이른바 개혁적 지사의 견결(堅決)한 역정과 비극적 운명의 한 전범을 보여준 풍운아적인 인물이었던 점은 인정된다.
또한 기묘사림은 청요직 연대의 속성을 가장 표본적으로 보여준 집단이기도 했다. 먼저 그들은 상당히 젊은 인재들이었다. 그들의 나이는 조광조가 사화 당시 38세, 김정 34세, 김구 32세, 김식 39세, 기준 28세, 박세희 29세, 박훈 36세 등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도덕적인 원칙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기묘사림은 옥석구분(玉石俱焚)으로 대신을 탄핵함으로써 대신들의 반감을 샀고, 소격서를 폐지함으로써 국왕을 소외시켰으며, 대량의 위훈삭제에서 대신과 국왕의 위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들이 주도하여 실시한 현량과에서는 기득권 대신들 못지않은 당파성을 노출하여 대부분의 합격자를 자파 인물로 채웠다.
그럼에도 기묘사림의 도덕성은 대신들보다 우월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도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개혁을 주도할 자격이 있는지에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탄핵했던 재상 가운데 신용개, 정광필, 김응기 등은 젊어서 그들 못지않은 도덕과 기개를 행사했던 청요직 출신이었다.
특히 김응기는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였고, 정광필은 기묘사림의 탄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화가 발발하자 끝까지 기묘사림을 구제하고자 노력하다가 파직 당했을 정도로 도덕적인 인물이었다. 심하게 말해서 기묘사림은 젊은 나머지 아직 ‘타락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뿐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현대사에서 혁명과 창업에 성공한 ‘위대한 인물들’을 알고 있다. 마오쩌뚱, 김일성, 호찌민, 카스트로 등이다. 이 인물들이 성공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이들이 도덕적이었기 때문일까? 물론 이들은 혁명의 대상들보다 단연 도덕적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에게는 목숨이 여러 번씩이나 들락날락했을 정도의 위기와 죽음과 더불어 이겨낸 풍찬노숙의 이력이 있었다. 요컨대 그들에게는 혁명과 창업을 주도할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과는 달리 왜 레닌은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한 것일까? 그의 위대한 혁명적 성과는 후임자 스탈린에 의해서 변질되고 훼손되었다. 레닌에게는 높은 도덕성이 있었지만 자격 면에서 위 네 명에 뒤지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레닌은 위 네 명에 비해 적은 노력으로 성공했던 것이 사실이다.
혁명에서건 창업에서건 개혁에서건 도덕성은 기본적인 것이다. 하지만 도덕성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체자의 ‘자격’이다. 조광조를 비롯한 기묘사림은 이것을 간과한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숙청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들 역시 필경 그들이 탄핵의 대상으로 삼았던 대신들과 비슷한 삶의 역정을 밟아 나갔을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들과 시민단체들은 실패한 기묘사림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들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은 도덕의 순수성도 약할 뿐더러 개혁 주체로서의 자격에도 문제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아 개혁세력의 씨가 말랐을 때 혁명이 비로소 발아되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