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조선 후기의 문신 유수원(1694~1755)은 조선시대 제1의 주론자(主論者)로 중종 대의 조광조를 꼽았다. 주론자란 대간 언론의 향방을 선도하는 사람을 뜻한다. 조광조가 일약 주론자로 부상한 것은 ‘신씨복위상소사건’을 통해서였다.
신씨는 중종의 비로 책봉되었다가 반정 공신 박원종 등의 입김으로 8일 만에 폐위되어 사가로 쫓겨난 비운의 여인이다. 그녀가 쫓겨난 것은 연산군의 주요 대신으로서 반정에 반대했다가 살해된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마침 중종 비 장경왕후가 산고로 사망하여 후임을 구하려고 하자, 담양부사 박상과 순창군수 김정이 신씨복위상소를 올렸다. 신씨를 단지 죄인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쫓아낸 것은 부당한 조치였으니 차제에 이를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연좌제에 반대한 그들의 상소는 정당했지만, 이것은 의외로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것은 반정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으며, 신씨 폐출을 지지한 사람들의 정치적 입지를 어렵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신씨가 복위되어 왕자라도 낳게 되는 날이면 장경왕후 소생의 원자와 선후를 다퉈야 하는 어려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대간에서는 이들의 상소가 무엄하다고 판단하여 처벌을 요구했고, 대사헌, 대사간 양사 수장의 요구에 중종은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때 조광조는 정6품 사간원 정언에 임명된 지 보름도 안 된 때였다. 그는 처벌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대담하게도 자기를 파직하든지 아니면 사헌부 사간원 양사 대간 전원을 파직하든지 양자택일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언로(言路)는 국가의 흥망과 관계된다. 언로가 통하면 다스려지고 막히면 어지러워진다. 언책(言責)이 없으면 스스로 말을 극진하게 할 수 없으므로 간관(諫官)을 두어 그 일을 맡긴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이 혹 지나치더라도 너그러이 받아들여야 한다. 근자에 박상(朴祥)·김정(金淨) 등이 구언(求言)에 따라 진언(進言)하였는데, 그 말이 지나쳤다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지 어찌하여 죄를 준다는 말인가?
설령 재상(宰相)이 혹 죄주기를 청하더라도 대간은 구제하여 풀어 주어서 언로를 넓혀야 할 터인데, 도리어 대간이 죄를 청하여 언로를 훼손하였으니 먼저 그 직분을 잃은 것이다. 신(臣)이 정언(正言)으로서 어찌 구태여 직분을 잃은 대간들과 같이하겠는가? 서로 용납할 수 없으니 양사(兩司)를 파직하여 다시 언로를 열어야 한다.”
- 이상 1515년 중종 10년 11월 22일 기사, 조광조의 발언, 필자 윤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조광조의 주장이 관철되었다. 조광조를 제외하고 대사헌, 대사간을 포함한 대간 전원이 파직되었다. 우리가 여기에서 읽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6품의 신진관료가 쟁쟁한 상급자들을 상대로 다툴 수 있었던 조선 정치의 수준이다. 이전에 담양부사, 순창군수 등의 지방관료가 중앙관료들에게 소신껏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범상한 일은 아니다.
다음으로는 조광조의 논쟁력이다. 그는 어떻게 논쟁해야 이길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신씨복위의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그가 제기한 것은 임금이 의견을 구한 구언상소에 화답한 응지상소를 처벌하면 언로가 막힌다는 점 하나뿐이었다. 주제를 단순명료하게 가져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논쟁에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핵심사항이다.
하나 더 이야기하기로 하자. 여진족 추장 속고내가 국경을 넘어와 사냥을 하다가 조선군이 출동하면 약삭빠르게 종적을 감추곤 하는 일이 벌어졌다. 보고를 받은 병조판서 유담년이 기습작전으로 속고내를 사로잡으려는 방책을 세워 중종의 윤허를 받는다.
이때 조광조는 부제학이었다.
“속고내가 만약 죄가 있다면 죄를 묻는 군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지금 변경에 요란을 피운 것이 아닌데 몰래 군사를 내어 엄습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합니다."
조광조는 왕자(王者)라면 이적(夷狄)을 대함에도 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병조판서 유담년이 논박하기를,
"옛말에 ‘밭가는 일은 종에게 물어야 하고 베 짜는 일은 여종에게 물어야 한다.’ 하였으니, 이와 같은 일은 신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중종은 전교하기를,
"만약 속고내가 지금 와서 변경을 요란하게 하면 사로잡는 것이 옳다. 그러나 사냥하러 왔는데, 도적의 꾀를 행하여 엄습해서 사로잡는 것이 사체에 어떻겠는가?"
- 이상 1518년 중종 18년 <중종실록> 기사 발췌
중종은 조광조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조광조에 대한 중종의 편애도 작용했겠지만 일단 논쟁 수준에서 조광조가 유담년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는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유담년은 군사작전을 밭 갈고 베 짜는 일에 유추하여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논리적 오류에 해당한다. 군사작전과, 밭 갈고 베 짜는 것은 동동하게 유추될 수 없는 일이다. 논리에서는 이런 오류를 ‘잘못된 유비추리의 오류’라고 한다.
반면에 조광조는 ‘왕자의 도’를 자기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 논거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확보하고 있는 우월한 논거라서 그 어떤 논거도 이를 격파하기가 어렵다. 우월한 논거를 확보하는 것은 논쟁에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가장 요긴한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