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반란 맞섰던 금정 출신 故 정선엽 병장, ‘명예회복 시작됐다’

12·12 당시 국방부 사수하며 반란군과 교전 중 사망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24일 조사 결과 발표
국방부에 ‘순직자’ 아닌 ‘전사자’로 변경 요청
[2022년 5월 27일 / 제369호]
우용희 기자l승인2022.05.27l수정2022.05.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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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전두환 등의 신군부 군사반란 당시, 마지막까지 국방부를 지키다 사망했던 금정면 출신 정선엽 병장의 명예회복이 추진되고 있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지난 24일 열린 제51차 정기회의에서 ‘12·12 군사반란’ 세력에 맞서 싸우다 숨진 ‘정 병장’ 사건의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금정면 출신의 정선엽 병장은 1979년 12월 12일 당시 국방부 헌병대 소속이었다. 조선대 2학년을 다니다 입대했다. 12·12 때는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연결하는 지하벙커의 초소에서 근무하다 국방부를 점거하려는 신군부와의 총격전 중에 숨졌다. 제대를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13일 새벽 신군부 주요 인물인 박희도 1공수여단장이 지휘하는 공수부대 병력이 국방부를 공격해 점령했다. 이 때 국방부 50헌병대 초병 근무 중이었던 정선엽 병장은 국방부장관이었던 노재현 씨의 사수 명령을 지키며 항전하다 두부관통상으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국방부에서 발생한 12·12 군사반란의 3번째 사망자였다.

당시 사망 사건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위원회는 앞서 3월 열린 49차 정기회의에선 12·12 당시 숨진 정선엽 병장이 반란군에 저항하다 숨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 국방부를 점령한 공수부대원들이 정 병장의 엠(M)-16 소총을 빼앗으려 하자 정 병장은 “줄 수 없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정 병장은 한 공수부대원이 쏜 총에 목과 가슴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1공수여단은 당일 일지에 “벙커 출입구 헌병 근무자 2명 중 1명 체포, 1명은 반항 사격과 함께 벙커로 도주 사살됨”이라고 기록했다.

위원회는 정 병장의 사망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재심사해 명예를 회복해줄 것을 국방부 장관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현행 ‘군인사법’은 적과의 교전 또는 적의 행위로 인해 사망하거나 무장폭동, 반란 또는 그 밖의 치안교란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로 인해 사망한 장병을 ‘전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정 병장의 경우 군사반란을 저지하기 위한 교전 중 사망해 ‘전사’로 처리해야 한다는 게 위원회 입장이다.

한편 지난 지난 2017년 4월 정 병장의 모교인 광주 동신고등학교 총동문회는 모교 운동장에 정 병장을 추모하는 나무를 심었다. 조선대학교에서도 고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정 병장의 형인 정훈채 씨는 “동생의 묘비에는 여전히 ‘순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족이 적극적으로 요구를 하지 않아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동생은 초병으로서 국방부 장관의 청사 사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다 숨졌으니 ‘전사’가 아닌가요. 이제는 이것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고 더 늦기 전에 완전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우용희 기자  news@woori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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