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조 정 (영암읍 출생)

아이고 웃동네서 멀리 행차를 하셌네 성님이 어짠 일이요 영감님이 마실 가도 된다고 하십디여

이 오늘은 자네들도 잔 보고 잡고 내래와 봤네야 오늘사 말고 암도 없으먼 어짜까 그랬는디 다들 얼굴 봉께 좋네

영감님 지시는 성님이 못 오시재 영감 없는 우리는 날마동 보요 우리 요라고 모여 놀으라고 영감들이 인공 핑계대고 저 시상으로 가부렀능갑써
오살 것 밸 소리가 다 많네
달 볼긍게 싸목싸목 걷기도 좋드만 달도 희고 눈도 희고 대낮이나 한가지여   

금메 말이요 달이 대낮같소 이런 날은 앉은뱅이 시암에 사는 구신도 들여다 보인당게
오메 그런 말 좀 하지 마야 집이 갈 때 무섭단 말다
웜마 머시 무사야 도채비하고 친해지먼 부자도 되고 그런 거시여
오메 풍신 자네나 홈빡 친해지고 미남자 도채비도 만나소 글소이  

근디 그 도채비가 참말로 있기는 있능갑습디다 성님네 고샅 들어가는 꼬랑 우게가 뽕밭 아니었소 거그서 우리 함마니가 도채비들을 봤다등만 오늘같이 달이 명경같은 날 영심이네 집이서 놀다가 집에를 오신디
고샅 돌기 전에 뽕밭에서 먼 날씬헌 여자 셋이가 뽕잎을 따드락 안 하요 전에는 노무 밭에 뽕잎 도독질하는 사람들도 있고 안 그랫소 우리 함마니는 그런 사람들인 중 알고 들으라고 큰소리로 머락 했다요 

오메 감장들 잘 못 하네 이슬 묻은 뽕잎 묵으먼 누에들이 다 죽어분 거시네 근디 그 말이 아조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여자들이 앞에서부터 한나씩 뽕뽕뽕 사라져 불고 천지가 교교하드라여

자네 함마니 무사서 오줌 지래부렀것네 오메오메 나 좀 봐야 이야그 듣니라고 콩을 주서서 뉘 골라둔 디다 넣부렀다 

금메마시 우리 함마니가 여장부고 간이 큰 양반인디도 이것들이 도채비였구나 생각항께 소름이 쪽 끼쳐가꼬 사립이 닫힌지 어짠지도 모르고 방으로 담박질을 하셨단 거여 
그러셨것네 우리 영감이 가을에 금정 큰집서 지사 지내고 오다가 도채비에 홀려서 무단히 심 뺐다고 그러대
-오메 으짜까 요새도 도채비가 보인다요
-성님네 아자씨가 봤다먼 고것은 참이재. 그 냥반이 빈통없는 소리 하실 냥반이가니
-오늘 일은 크게 나부렀구만 성룡 어메야 니 집에 가기 다 틀려부렀다
-이 참말이여 영감님이 지사 지내고 오신디 달이 으찌케 볼긍게 구정봉 바우 틈서리서 자는 고라니가 말가니 보일 것 같드라네 자시가 지우러서 축시 되야간 시간잉께 질에가 뭔 갱아지 한 마리 없재
공회당 지나서 으슥하니 전봇대 서있는 자리 안 있능가 거까지 왓는디 거그가 신작로가 굽은 데가 없는 뎅께 앞이 훤한디 저만치서 여태 안 보이던 사램이 흰 두루매기를 입고 흔연시럽게 걸어가드라네

아이고 잘 되얐다 아직도 오 리나 남었응께 저 사람하고 말이나 함서 가야쓰것다 그러고 길 줄일라고 부지런히 걸었다여 우리 영감님이 걸음이 빠른 냥반 아닌가 근디 그 사람은 더 빠른가 어쩐가 방방하니 떨어진 거리가 줄어들들 않드라네 
나도 걸음걸이라먼 누구한테 지는 사람이 아닌디 저 사람도 굥장히 빠르구나 생각을 허고 영감님이 불렀다네 앞서가는 선비님 어디 가시는 분이요 같이 갑시다하고 말이여
오메 그랬드니 입때 걸어가든 사램이 휭하니 흔적이 안 보여불드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