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한데 모여 북적대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고독해서 죽어가고 있다.
- 슈바이처

사람에게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처녀가 시집가지 않겠다’는 말과,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 그리고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고 하는 말이 그것이다. 입으로는 죽어야지 하지만 막상 죽음이 임박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그만큼 멀리하기도, 가까이하기도 어려운 문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던가? 인생은 태어났으니 반드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임에도 누구나 나에게만은 죽음이 가급적 늦게, 멀리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돌아갈 그곳이 두려워 불안하기도 하거니와, 고된 인생살이지만 그래도 이승이 좋아 떠나기 싫어하는 복잡 미묘한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 죽음인 것 같다. 그런데 가끔 젊은이들이 모여 웃자니 웃을 수 없는 노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얼른 죽어야 할 텐데…”라고 하시면서도 어디 조금만 불편하면 스스로 병원부터 달려가시니 그것이 다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젊거나 늙거나 몸뚱이 어느 한 곳이 불편하면 병원으로 달려가는 이유가 오래 살고 싶어서는 아니다. 단박에 불편하고 아픔을 견딜 수 없는 까닭에서이니, 어쩌면 죽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진심일 때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며칠 전 어르신들끼리 나눈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가 있다. “요즘 서방님 건강은 어때?” “워낙 몸이 약해서 걱정이지?” 아마도 70이 훨씬 넘어 보이는 어르신끼리 나눈 이야기를 곁에서 듣자하니 몸이 약해서 걱정하시는 할머니의 서방님 연세가 궁금했다. “어머니, 서방님 연세가 어찌 되셨어요?”라고 했더니 74세란다. 그 정도면 건장하신 몸이라도 아픈 곳이 많아질 연세구만 몸이 약해서 걱정이라니 어머니라서 자식 걱정이며 아내라서 남편걱정 하는 것이 천상여자의 몫인가 보다. 누구나 퇴직하면 생활공간이 좁아지는 것이 현실이지만 특히 남자들은 더 심한 것 같다.

그뿐인가 요즘은 홀로 된 70대 남자가 가장 살기 힘들다고 한다. 아무리 아옹다옹하고 살아도 늙으면 싸우는 재미로 산다하지 않던가? 싸울 상대가 없을 때 그때부터 불행한 것이니 아침에 만난 할머니의 서방님 걱정 또한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현실임을 알겠다.

한 이삼일 전부터 남편의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다. 감기인 듯한데 기침을 힘들게 하면서도 병원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출근 때 병원 다녀오시라는 당부까지 하고 나왔다. 그것은 이제는 어디가 불편하다 싶으면 회복도 늦어지거니와 혹여 아이들이 알아 그들의 걱정거리라도 될까 염려되는 것이다. 누구나 아프고 불편하면 우선 고독해진다. 부모의 고독은 자식의 걱정과는 무관한 것이기에 오래 살고 싶은 삶에 대한 욕심보다 앞서 고통과 고독에서 그리고 다른 삶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 같은 몸살기에도 스스로 의료기관을 찾을 수 있을 때 치료하고 관리해야 옳을 일이다. 우리는 몸이 건강할 때도 고독을 피하기 위하여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외로움과 고독함은 분명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는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로워지고 고독함을 느낄 때면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외롭거나 고독할 때 누구도 붙잡지 않고 그저 혼자서 묵묵히 견디었던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덕에 몸으로 아픔이 있거나 마음으로 고독함을 느낄 때 비로소 그 시간에는 온전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까지 갖게 된다. 사람으로 인하여 느끼는 고독은 소외로 인한 외로움일지도 모를 일이기에 어쩌면 내게 고독은 나를 성장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도 없이 이어지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서글픔인지도 모르는 고독을 즐기기를 좋아한다. 지난 일곱 번째 나의 작품집 ‘바람꽃 편지’를 상재했을 때 “자급자족하는 시인”이라고 작가소개를 맡아하신 분의 말씀이 요즘 들어 참 기분 좋게 다가온다.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다. 스스로 만들어 초대해온 고독과 사람에게 받은 실망으로 다가오는 고독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혼자가 아닐 수는 없지만 함께 사는 이웃의 고독에게 나로 인하여 상대가 고독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늙음으로 인하여 훈련되지 않은 고독에 시달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삶이란 것이
눈물 흘리다가 닦고
견디다가 이루고
그립다가 사랑하는 사이에
데면데면 꿈길처럼
아득해지는 것

누구나
바람처럼 가볍게 깨끗하게
남김 없는 것이 심지가 되어
남는 것.

이 세상
마지막의 순간을 만났을 때
누군가 찾아내야 할
헝클어진 일이거나
누구에게라도 숨겨야 할
비밀 하나 흘리지 않아야 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자리거나
다시 만날 수 없는 이에게
끝끝내 당당하게 살아 내는 것

그래
남김없이 사는 것이
남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