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종교는 다음 시대의 문학적 여흥거리다.
- 랠프 월도 에머슨

▲ 시인 박춘임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추석연휴가 끝났다. 예외 없이 민족대이동이 일어났고 그 틈새에 우리부부 역시 긴 여행을 다녀온 듯한 연휴를 마쳤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오롯한 가족들과 한솥밥을 나누며 종교를 갖기 전 음복절차 같은 감사와 음덕이 있기를 간절한 기도로 마음속 깊이 빌어마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문득 얼마 남지 않은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꿈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올 추석 차례 상은 특별한 긴장감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말하자면 조상님께 제사를 올린 가족들이 ‘음복’을 즐기며 바라고 원하는 마음을 더욱 투명하게 드러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사이뿐만 아니라 신명이나 죽고 없는 조상과의 사이에도 음복을 통해 소원하는 마음을 갖는 절차가 이루어진다. 차례를 지내고 나서 제상에 올랐던 제수와 제주를 나누어 먹는 이 음복절차는 신인(神人)과 조손(祖孫)을 잇는 결속 수단이었다. 이처럼 조상과 후세를 잇는 음복술을 나누면서 정치권에서 쫓고 쫓기는 사람들의 긴장감은 아마도 남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진실할 때 통(通)하는 것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얻은 마음, 남을 핍박하고 궁지로 몰아서 얻은 반사적 이익이 결코 오래갈 수 없음은 민심과 천심이 맞닿는다는 이치와 같다. 아울러 정치권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지역 정서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려시대를 거치고 조선시대를 겪은 근세까지도 법도 있는 집안에서는 친계로 8촌, 외계로 4촌, 처계로 2촌까지는 한솥밥 먹는 것이 상식이었다. 지금도 직장이라든지 일체감을 다지는 공간에서 “한솥밥을 먹는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만큼 가깝다는 의미일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마음이 통하는 이치를 깨달아 무릇 조상을 두고 음복하는 마음처럼 내 가까운 이웃을 조상처럼 섬기는 정이 그립다. 돌아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웃의 아픔을 즐거워하며 혹은 나의 아픔을 알아주는 이가 없어 서글퍼하기도 하는 상황들이 비단 이 같은 몇 줄의 글이나 몇 마디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눈뜨면 만나지는 내 지역 내 이웃들이 한솥밥을 먹고 사는 듯, 늘 고향이라 부르게 되는 듯, 그랬으면 좋겠다. 올 추석날 밤에는 왕인 박사 유적지에서 가졌던 달맞이공연에 참여했었다. 함께 어우러져 섞어지는 물 같은 사람들이 어찌나 보기 좋았든지 월출산에서는 보름달이, 우리에겐 사랑의 보름달이, 그리고 세상에는 둥근 情이 떠오르는 평화로운 영암 땅, 이곳이 내 고향이기를 옛날 음복하는 마음으로 간절함을 더해 기도해본다.

원칙이거나 규칙이거나
사람을 위하여
사람이 만들어놓고

예의범절이거나
상대방 입장의 깊은 사정은 관심도 없이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시대정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라가야만 하는
안타까운 순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공감을 넘어서야 동감이 되는 것이기에
자분자분하고 싶은 말들
주섬주섬 주머니에 쿡 질러 넣어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