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빈·집] 알고 보면 쓸모 있는 빈집
농촌의 인구감소는 비단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빈집과 빈 상가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문제이다. 이에 빈 건물을 정비하는 등 재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대부분의 빈 건물이 사유재산으로 지자체가 나서 정비·활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영암우리신문에서는 전국의 성공사례를 찾아 지역 실정에 맞는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7차례에 걸쳐 기획 보도한다.

< 글 싣는 순서 >
- 늘어나는 빈집에 어둠이 짙어지는 영암
- 공간의 다양화 전북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 빈집, 체험휴양 명소로 거듭나다. '삼보산골 마을'
- 폐가에 전통을 붓다, 충남 공주 ‘잠자리가 놀다 간 자리’
- 빈집을 도심농장으로…청년들의 도전, 미추홀 ‘빈집은행’
- 마을 미술프로젝트로 탄생한 부산의 산토리니
- 공동체 의식 회복…주민주도의 ‘군산 우체통거리’

IT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손 편지 축제’가 열리는 곳이 있다.

각종 스마트기기에 밀려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던 손 편지의 감성을 되살리며 전국의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거리 곳곳에는 손질한 폐 우체통에 그림을 그려내었던 예쁜 우체통을 상가 앞에 설치해 관광객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주고 있다. 

바로 110년 역사의 군산우체국을 스토리텔링한 ‘우체통거리’이다.

‘우리 동네, 스스로 개발해보자’로 출발
주민공모사업과 자발적 모금이 초석

전북 군산시의 개복동, 신창동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군산의 중심지이자 문화와 예술의 거리였다. 하지만 시청 이전과 신도심 개발로 자연스레 젊은이들이 떠나며 상권 쇠락으로 이어졌다.

2014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되었지만, 개발까지는 연결되지 못했다. 이에 지역민들은 ‘우리 동네를 우리 스스로 개발해보자’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47명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도란도란 공동체’를 설립하게 되었다.

지역주민이 사업을 기획, 예산확보, 사업추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진짜 주민주도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의 ‘공동체’라는 생각으로 건물주와 그 건물에서 장사를 하는 운영주 모두 회비를 내며 도시재생사업에 뜻을 모았다.

이들은 많은 논의를 거쳐, 11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닌 군산우체국 본점을 주제로 스토리텔링한 ‘군산 우체통거리’를 기획했다. 그 시작은 2016년 주민공모사업에서 300만원이라는 작은 예산을 확보한 것에서부터였다.

이에 힘입어 회원들은 서울 강남, 인천, 천안, 보성, 순창, 남원 등 전국을 돌며, 폐 우체통을 수거해왔다. 40여개의 낡은 우체통에 지역 문화단체 ‘미술공감 채움’의 손길로 캐릭터가 입혀지고, 거리 양 옆으로 설치를 했다. 또 ‘우체부 아저씨’라는 조형물도 설치했다.

주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거리 활성화를 위해 ‘군산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를 조직했다. 주민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2시간씩 교육과 토론을 통해 주도적으로 주민단합과 내부 역량강화에 힘썼으며, 경관사업과 도시재생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후 군산시와 경관협정을 체결하고 전북지방우정청과 함께 ‘우체통 거리’를 활용한 문화관광홍보 콘텐츠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후 군산 우체통거리 사업은 본격화되었다. 주변 폐가 정리와 신호등 설치, 우체통 옆 벤치 설치를 시작으로 태양광을 활용해 밤에도 환하게 거리를 비춰줄 가로등도 설치됐다. 또 포토존인 ‘손 편지 만나는 곳’을 설치하고 거리를 정비해 나갔다.

심지어 도로명까지도 기존의 ‘거석길’과 ‘중정길’에서 ‘우체통거리 1길’과 ‘우체통거리 2길’로 변경될 정도로 변화가 이어졌다.

인근에 위치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찾는 관광객이 하나둘 연계된 관광지로 인식하고 이곳을 찾아들기 시작할 무렵, 주민들은 ‘손 편지 축제’를 기획해 운영했다.

2018년 ‘추억을 만들자’는 주제로 열린 ‘제1회 손 편지 축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해 시작했다.

다양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외국인 손 편지 쓰기 대회’를 진행했는데, 베트남 여학생이 사망한 모친에게 쓴 편지가 대상을 받았고 그 편지가 실제로 베트남 가족에게 보내졌다. 이것이 베트남 현지 언론에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국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공동체 의식 회복…자발적 약속정해 지켜가

매년 새로운 주제를 입혀 운영하고 있는 ‘손 편지 축제’이지만, 주민 주도라는 점은 변치 않고 있다.

특히 우체통거리 주민들은 우체통을 설치하고 난 후 현재까지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상가 앞에 조성된 꽃과 나무에 물주고 거리 청소하기, 빈 터를 소유 주민과 협의해 주차장 등으로 쓸모 있게 활용하기, 주민이 솔선수범해 상점 앞 거리에 주차하지 않기, 낡고 흉한 건물은 보수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생기지 않거나 최소화되도록 건물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임대료 상승률 제한 합의도 이루는 등 안정된 ‘체질 개선’으로 주민이 행복하고 상생하는 마을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주민들의 노력으로 군산 우체통거리는 거듭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입소문과 SNS를 타고 군산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가 되었고, 거리 조성 후 비어있던 상가도 신규 점포로 채워졌다. 적막했던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이며 거리가 살아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상인들과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 회복’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을이 좋아질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거리 활성화를 위한 문화행사 하나하나 주민이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뭔가 제대로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껴가면서, 이제 주민끼리 서로 의지하게 되고 우체통거리의 미래를 함께 꿈꾸게 되었다.

배학서 군산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장은 “군산 우체통거리의 모습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며 “우체통거리에 많은 분들이 찾아서 주민협력의 힘도 느끼고, 주민주도 도시재생 성공사례도 참고했으면 한다”고 자부심을 전달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