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조선일보의 기획 기사 중 ‘을사조약 직전 고종은 일본서 뇌물 2만원(25억원)을 받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조선>이 친일청산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이런 기획물을 기사화하는 데에는 저의가 있다. 일례로 조선일보는 희대의 친일 친미 위선자 서재필을 칭송하는 기획기사와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벌인 적도 있다. 

이 기사는 고종이 을사늑약의 대가로 뇌물 25억 원을 먹은 것처럼 왜곡, 조작하고 있다. 하지만 문맥을 들여다보면 이 돈은 뇌물이 아니라 이토히로부미 방한의 행사 자금일 뿐이다. 사실은 이 돈을 받았는지조차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이 기사의 근거 사료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조작과 왜곡을 일삼은 친일식민사관의 감염원들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가 근거로 제시하는 ‘일본공사관 기록’이 어떻게 우리 역사의 근거 사료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고종실록>이라는 것도 조선의 사관이 기술한 ‘실록’이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조선 비하 ‘친일사관의 결정판’에 불과하다.

나는 정치적 목적이 있어 보이는 조국, 조정래 식의 친일청산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조선일보> 식의 역사 조작에는 더욱 결연히 반대한다. 나는 음모 수준의 이 따위 기획 기사를 저주한다. 이런 기획 기사는 이 땅에 친일파가 아직도 펄펄 살아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 사료 더미의 비대칭성에 유의해야 한다. 

“일본공사관 기록을 비롯한 수많은 일제 기록들, 반드시 옳지만은 않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 외교관들의 공식·비공식 기록과 개인일기들, 친일파(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서재필, 윤치호, 이인직, 이광수), 일제밀정(서재필, 윤효정, 이규완), 용일분자(김윤식, 정교, 황현), 반고종친일역모자(이규완, 이승만) 등의 저서와 기록, 당대 모호한 인물들의 개인일기와 자기정당화 에세이, 이들의 미담 일화집과 전기, 그리고 동학 농민군에 적대적이었던 독립신문, 황성신문, 매일신문, 제국신문 등 신문 잡지류, 그리고 동학 민중사상 민족종교를 이단과 사설로 몰았던 최익현, 유인석 등의 문집과 유고집, 사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제멋대로 기술한 서양 선교사들과 전문성 없는 외국인들의 ‘우리 전통의 몰이해, 서구 기독교적 편견이 뒤범벅된 글과 서적들’이 넘쳐난다.

반면 백성의 신음소리와 비명소리, 동학농민, 의병, 해산국군의 아우성과 분노와 함성, 이들의 전투와 투쟁은 언어화되지 않았고 고종과 400~500명에 달한 별입시 간의 수많은 비밀보고와 비밀지령은 기록조차 되지 않았으며, 고종이 무수히 발령한 밀명과 밀지 그리고 의병 전투 등은 문자 기록이 소수 남았으나 식민시기를 통과하면서 민가의 곳간바닥과 일제의 창고에서 적잖이 훼손되거나 망실되어 버렸다…식민지 시대를 통과하면서 거의 다 일제에 의해 위조되거나 인멸되었다. 이런 식으로 사료 더미는 지극히 비대칭적으로 삐뚤어져 있다.” (황태연 저,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