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칼럼]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 조선시대 ‘경연’에서 배워라

율곡 이이에 대하여 - ⑦
[2020년 10월 8일 / 제288호]
영암우리신문l승인2020.10.08l수정2020.10.0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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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갑수

정치인들의 교양 수준이 낮은 것은 현대 데모크라시 국가들의 공통점이다. 중앙당교가 활성화되어 있는 중국과 달리 한국에는 현직 정치 지도자를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 나는 서구식 데모크라시를 무분별하게 수용한 나머지 중우정치로 치닫고 있는 한국에서 조선 시대의 경연(經筵)을 현대적으로 부활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연(經筵)은 ‘경전을 공부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총리, 장관, 비서관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경연에서는 공부 외에도 국가 중대사에 대한 토론과 논의가 함께 이루어졌다. 

경연은 대체로 하루 1~3회 실시되었다. 경연이 활성화된 시기는 치세였고 이것이 파행된 시기는 난세였다. 더불어 훌륭한 왕은 경연에 적극적이었고 부족한 왕은 경연에 소극적이었다. 이를 테면 세종, 성종, 영조, 정조 등은 경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세조, 연산, 광해 등은 경연을 백안시했다.

경연은 단순한 학술모임이나 정책회의가 아니라 헌법적 위상을 가지는 국가 체제의 제도(시스템)였다. 세종의 집현전, 성종대의 홍문관, 정조대의 규장각 등에서 경연을 관장했다. 한편 왕세자에게는 따로 서연(書筵)을 실시하여 미리 왕업 수업을 받도록 했다. 

한국은 정치인에 대한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다. 한국의 대중은 정치를 냉소하는 것이 세련된 현대적 태도인 양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인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한국 언론이나 대중의 수준도 정치인보다 결코 높지가 않다. 비판정신은 좋은 것이지만 무지가 파생시키는 냉소주의는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는다.

1575년 선조 8년, 사헌부 집의(執義, 종3품) 신점이 말했다. “북방이 텅 비어 오랑캐 기병이 쳐들어온다면 막아낼 계책이 없으니 미리 장수를 선택하여 기르십시오.” 이에 선조가, “오랑캐 기병이 오거든 조정에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으니 그 사람을 시켜 막을 것이다.”라고 대꾸했다. 

사실 이것은 군주로서 용렬한 반응이었다. 기득권 세력이 아직 남아 있고 신진 사류가 뚜렷한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대안 없이 주장만 하는 신하들에 대한 반감이 섞인 말실수였다. 이를 잠자코 보고 있던 율곡이 입을 열었다.

“주상께서 방금 말씀하신 ‘큰소리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지목하신 겁니까? 큰소리만 치고 실속이 없는 자를 지목하시는 겁니까? 그런 사람을 쓰면 반드시 일을 그르칠 것인데, 어찌 그 사람을 시켜 적을 막게 한다는 말씀입니까? 또 만일 옛것을 좋아하고 성인을 배우려는 사람을 큰소리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면 주상의 말씀이 극히 온당치 못합니다. 맹자가 양 혜왕과 제 선왕을 만나서도 오히려 요순 임금을 목표로 삼으라고 했는데, 그것도 큰소리를 친 것입니까?”

율곡은 선조의 발언을 표면과 이면 양면으로 논박한 것이었다. 표면상으로 보아 큰소리만 치는 사람을 장수로 삼겠다는 것은 군주로서 정책의 포기나 다름없다는 것, 이면으로는 바람직한 이상을 추구하는 것과 큰소리치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파고드는 논리에는 반론을 펴기가 어렵다. 선조는 아무 답변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율곡은 멈추지 않고 자기가 우려하는 바를 더한다.

“임금이 말이 한 번 나오면 천리 밖에까지 전파되어 옳지 못한 일이라면 왕명을 거역하게 되는 법입니다. 전하께서 학자를 큰소리나 치는 사람으로 지목하여 북쪽 변방으로 보내겠다고 하시면 훌륭한 학자는 기운이 꺾이고 못난 사람이 자기에게 관직이 돌아올까 기대하여 갓을 털면서 좋아할 것입니다. 임금의 발언이 선한 사람을 좌절시키고 악한 사람을 기쁘게 해 준다면 어찌 그릇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만 하면 서릿발 같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이토록 명석한 논리와 실제적 판단력은 조선 최고학자 겸 정치가인 율곡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장면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깨우칠 수 있다. 먼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조선 조정의 민주적인 풍토이다. 또한 면전에서, 그것도 여러 사람이 배석한 자리에서 행해진 신하의 강성 비판을 제어하지 않고 침묵으로나마 인정하는 왕의 태도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자 선조는 율곡의 충언에 동의를 표했다. 우리가 조선 시대 역사에서 배울 것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많다. 오늘의 한국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은 조선시대의 경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깨우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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