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 문화창작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시회 ‘회귀’의 세 번째 주자로 나선 이숙종 작가의 전시전 ‘길과 기억’이 문화향유에 목말라 있던 군민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이숙종 작가의 ‘길과 기억’은 메마른 감정이 가득한 검은 아스팔트 도로 위, 사람들과 자동차가 남긴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은 뒤 HDR기술을 이용한 편집과정을 통해 새로운 색들을 이끌어내 관람객들로 하여금 새로운 상상과 감정을 유도하는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 칠을 한지 오랜 시간이 흐른 듯 처절하게 칠이 벗겨져 버린 흰 선. 아무런 색감 조절 없이 단지 여러 단계의 음영을 겹치는 HDR기법으로 화려한 색을 구현했다. 아스팔트 원재료에 섞여 있는 유리가루들이 빛을 반사하며 나타내는 색들로 깊은 밤하늘의 은하수나 물결을 상상케 한다.

이 작품들은 이숙종 작가가 월출산 비경과 당산나무를 담기 위해 영암 곳곳을 두 발로 누비며 느꼈던 감성을 담아낸 것으로 이 작가의 열정과 많은 노력의 흔적을 엿 볼 수 있다.

특히, 긴 편집과정을 거치며 더욱 풍부한 색, 공간과 공간의 어우러짐, 이질적 재료의 혼합 된 모습을 통해 아스팔트 위 불규칙성을 담아 낸 작품들은 따로 제목을 달지 않아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이숙종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어릴 적 걷고 뛰어다녔던 까만 길. 한여름 걸을 때면 너무나 뜨거웠던 길. 주위 풍경과 계절의 변화에도 그대로였던 검정의 길. 나락(벼)에게 공간을 내어주며 자연 건조기가 되었던 아스팔트 길’이라고 주제를 설명했다.

▲ 비 오는 날의 도로를 담아 촉촉한 느낌을 내 뿜는 이 작품은 도로 위 황색선이 HDR기법을 만나 강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뜻하지 않게 발견 된 금광이나 맛있게 구워진 와플, 혹은 두 마리 소가 강렬하게 충돌하는 소싸움을 떠 올리게 한다.

이 작가는 “내가 지내온 삶의 모습의 기억들이 머릿속 주름에 남아 있는 것 같이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남겨진 물리적 형태의 흔적들로 가득한 아스팔트 위 모습들을 사진에 담았다”며 “단순히 사람과 이동수단들이 오고 가는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도로 위 전체의 부분을 나누고 세분화해, 여기에 자세를 낮추는 수고를 더해 많은 색과 흔적, 여러 소재의 얼룩, 다양한 재질들로 결합한 형태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비디오촬영 아르바이트로 사진을 시작하게 된 이숙종 작가는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즐기며 피사체와 소통하는 순간을 담아내는 사진작가로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서 땀 흘리며 만들어내는 그 만의 유쾌한 결과물로 사진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