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갑수

이번에는 여담 삼아 시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율곡은 22세에 노경린과 결혼했는데 자식을 보지 못했다. 부인 노씨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 석담리였다. 이로써 율곡의 삶과 관련되는 지역은 유아기를 보낸 강릉, 아버지의 고향 파주, 그리고 처가가 있는 해주 석담리, 세 곳이 된다. 

율곡은 관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에는 주로 경기 파주 또는 황해 해주 석담리에 머물렀다. 

율곡은 해주 석담리에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짓고 제자를 양성했다. 이 정사는 훗날 사액서원이 되었는데, 사액을 받았다는 것은 사립 교육기관으로서 국가 공인을 받았다는 뜻이다. 율곡은 이 석담리에서 교육서 <격몽요결>을 썼다.

율곡이 과거에서 9번이나 장원을 했다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다.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던 조선시대의 과거고시에서 어떻게 9번이나 장원을 할 수 있었는지, 또한 율곡은 무슨 시험을 그렇게도 많이 응시했는지? 조금 이상한 일이다.

당시의 과거는 문과의 경우 진사과와 생원과로 2원화되어 있었다. 또한 지방에서 치르는 향시와 서울에서 치르는 한성시가 따로 있었다. 진사과와 생원과에는 각각 초시와 복시가 있다. 그리고 진사, 생원 합격자에게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대과 시험은 초시 - 복시 - 전시 3단계로 이루어진다. 

율곡은 이 10번의 시험에 응시하여 10번 다 합격했는데, 그 중 진사과 복시 한 번만 보통 합격하고 나머지에서는 모두 장원으로 합격한 것이다.

율곡이 26세이던 1561년 아버지 이원수가 사망했다. 율곡은 3년상을 치르고 1563년 가을에 탈상했는데, 이때부터 본격 시험 공부를 시작하여 불과 9개월 만에 진사과와 생원과에 모두 장원을 하고 한 달 후에는 문과 세 차례의 시험에서 모두 장원을 했다. 

대개 진사과나 생원과 중 하나만 합격한 후 몇 년을 더 공부해서 어렵사리 문과를 통과하는 것이 과거 합격자들의 노정인데, 율곡은 9개월 시험 준비로 진사과 생원과에 동시 합격하고서 불과 한 달 후에 문과까지 장원으로 급제했으니 이것은 전무후무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명종이 친히 율곡을 불러 직접 문답을 나눈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시 과거는 오늘날과 비교할 때 어떠했을까? 응시자와 합격자의 숫자 비율로 따질 때 당시 문과 합격의 확률은 오늘날 서울대 합격보다 약 300배 정도 어렵다고 한다. 이로써 볼 때 율곡은 세계 최고의 시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서울대 수석합격자의 뒷날이 그저 그렇듯이 조선시대 과거 장원급제자의 뒷날도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율곡은 여기에서도 예외였다. 그는 뒷날 학문적 역량과 인격적 완성도에서 9회 장원급제 이상의 성취를 일구었다.

[부기] 유럽이나 미국에 이런 인물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한국 교과서에도 나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