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암에살다
지난해 영암군이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됐다. ‘여성의 성장과 안전, 행복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뜻의 여성친화도시. 영암 속에서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펐던 그녀들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평범한 직장인이 틈틈이 적어 온 글들을 엮어 첫 시집을 발간했다. 30년 전 글부터 중년의 원숙함이 녹아 있는 글까지 담긴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유독 ‘성전댁’이라는 글자가 자주 등장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영암장흥지사에서 근무 중인 김선희 과장의 친정엄마다.

밋밋했던, 혹은 치열했던 본인의 삶에 ‘선물’의 의미를 담아 발간하게 됐다는 김선희 과장의 첫 시집은 친정엄마를 향한 절절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그저 죄송하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어느 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큰 딸로서 많이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들이 가슴속에 남아있죠. 어린나이에 결혼해 아이들 키우느라 친정에 신경을 많이 못 썼어요. 동생들 따라 서울까지 올라가서 식당일하며 대학공부 시킨 엄마를 보면 존경심과 죄스러움이 함께해요”

김선희 과장은 16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당연히 가세도 기울었다. 어머니 혼자 농사를 지어 오남매를 키웠다. 국어선생님이 꿈이었던 여고생은 당연하게 ‘포기’를 받아들였다. 20살의 꽃다운 나이, 그녀는 화사한 캠퍼스 대신 치열한 사회를 선택 당했다.

“우체국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농사도 지을 정도로 굉장히 부지런하고 건강하셨죠. 중학교 2학년 때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만들어 놓고도 쑥스러워서 못 달아 드렸어요. 그런데 며칠 안 돼 갑자기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5개월을 누워계시다 가셨어요. 가슴에 너무 많이 남아있어요. 한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그렇게 아버지 가시고 엄마 혼자서 오남매를 키우시느라 용돈 한 번 타기도 죄송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죠. 그런 상황에 대학은 자연스레 포기한 거죠. 그러다 우연하게 당시 ‘의료보험조합’이 사람을 구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시험이라도 한 번 봐보자’ 했던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죠”

그렇게 사회에 뛰어든 김선희 과장은 스물둘, 어린나이에 결혼을 결정했다. 하지만 녹록치 않았다. 그녀를 힘들게 한 것은 며느리로서의 삶도, 직장여성으로서의 스트레스도 아닌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은 아이와 아내보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더 소중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끊이질 않는 남편 때문에 많이 힘들고 속상했죠. 4살 차이나는 남편도 그때 당시 20대 중후반의 펄펄 끓는 나이었던 데다 부모님이랑 같이 살다보니 더 마음을 놓은 면도 있을 테고요. 친정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 시절 사회분위기는 여자의 이혼을 용납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돌아갈 수 없던 가장 큰 이유는 일찍 남편을 잃고 오남매를 홀로 키워 온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죠”

힘들고 외로웠던 시댁 살이.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친딸처럼 아끼고 보듬어 주던 시아버지덕분이었다. 하지만 버팀목이던 시아버지마저 야속하게도 혈압으로 세상을 등졌다.

“어린나이에 시댁에 들어와 살자니 정말 힘들었는데 시아버님이 많은 힘이 돼 주셨어요. 아버지를 일찍 잃은 것이 너무 가엽다며 정말 딸처럼 보듬어주셨죠. 정말 내 아버지처럼 사랑하고 의지했던 분이죠. 너무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임종도 못 지켰어요. 많이 감사하고, 죄송하고 그리워요”

국민건강보험공단 영암장흥지사에서 일해 온지 어느덧 33년이 지났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연도 참 많이 봐왔다고 한다. 김선희 과장은 7년 남은 회사생활을 마무리하면 차분히 글을 쓰며 안타까운 사람들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했다.

“자세히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업무특성 상 안타까운 분들을 많이 만나요. 많은 직원들도 공감하는 부분이죠. 그러다보니 직원들끼리 뭉쳐서 ‘건이강이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회사생활을 하는 직장인다보니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보장되는 나중이 오면 지금까지 미뤄왔던 봉사를 하고 싶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것 보다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다가가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에 자격증도 준비했어요. 정말 마음으로 봉사하는 단체가 있다면 들어가서 활동하고 싶어요.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접어뒀던 글도 다시 쓰면서요”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아픔, 죄스러움이 담아 첫 시집을 발간한 김선희 과장. 그녀의 차기작은 따듯하고 차분한, 즐겁고 행복한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