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빈·집] 알고 보면 쓸모 있는 빈집
농촌의 인구감소는 비단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빈집과 빈 상가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문제이다. 이에 빈 건물을 정비하는 등 재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대부분의 빈 건물이 사유재산으로 지자체가 나서 정비·활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영암우리신문에서는 전국의 성공사례를 찾아 지역 실정에 맞는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6차례에 걸쳐 기획 보도한다.

< 글 싣는 순서 >
1. 늘어나는 빈집에 어둠이 짙어지는 영암
2. 공간의 다양화 전북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3. 빈집, 체험휴양 명소로 거듭나다. '삼보산골 마을'
4. 폐가에 전통을 붓다, 충남 공주 ‘잠자리가 놀다 간 자리’
5. 마을 미술프로젝트로 탄생한 부산의 산토리니
6. 빈집이 청년들의 도심농장으로 인천 미추홀구

일제 수탈의 중심지였던 양곡창고, 문화예술이라는 새 생명 불어넣어
군산시를 비롯해 김제시, 익산시, 완주군에 걸쳐 펼쳐진 만경평야 일원은 일제강점기에 양곡수탈의 중심지였다.

그 가운데서도 완주군의 삼례읍은 만경강과 만경평야를 배후로 하고 있는 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곡창 지역으로 유명해 일제는 수확한 쌀의 대부분을 일본으로 수탈해갔다.  

일제는 서해 만조 시 만경강까지 바닷물이 유입되어 삼례 비비정을 거점으로 배를 이용해 양곡을 수탈했고, 열차를 통해서도 군산으로 양곡을 이출해 갔다. 때문에 1914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삼례역은 양곡 이출의 중심지가 되었다. 

많은 양곡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는 전북의 화물역사 주변에 대형 창고들을 지었고, 1920년대 삼례역 인근에도 일본인 대지주 ‘시리세이’에 의해 ‘이엽사농창’이라는 양곡창고를 설립했다. 삼례양곡창고는 해방 후 적산 건축물로 분류되어 국가에 귀속되었고, 이후 2010년까지 농협에서 양곡창고로 활용했다.

완주군은 양곡 창고로서의 기능을 다한 노후시설을 매입하면서 이곳의 변화를 시도했다. 완주군은 이곳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여 2013년 문화와 예술이라는 새로운 생명을 담아 ‘삼례문화예술촌’으로 재탄생 시켰다.

100여년의 세월을 양곡창고로 활용되었던 삼례역 바로 뒤 여섯 동의 창고 건축물은 외관을 유지한채 나무, 책, 디자인, 인쇄기계, 미디어, 커피 등 여섯 가지의 주제로 채워지며 새로운 한 세기를 문화 예술 관광의 중심지로 재생한 것이다.

오래된 건축물의 보존과 부활... 각각의 공간마다 특성가진 콘텐츠
삼례문화예술촌 내부에는 각각의 주제를 갖고 있고 오래된 건축물들을 보기 좋은 모더니즘 공간으로 부활시켰으며, 각각의 공간들이 하나의 마당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확실히 지금은 ‘재생의 시대’라는 것이 느껴진다. 조선의 궁궐과 전통 한옥이 부활하고 개화기 건축물들이 복원되고 일제의 산물마저 재생산되고 있다. 후손들은 재생된 공간 안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거나 단순 담백하게 오늘의 문화를 즐긴다. 

바로 보이는 시대적·외형적 특징만이 아니라, 이곳은 보여주는 전시뿐만 아니라 간단한 체험을 통해 문화와 예술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여행과 교육의 환경까지 쓸어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소박한 정문을 지나면 갖가지 재미난 조형물들이 방문객들을 반겨준다. 조형물 중에는 맹꽁이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다. 일제 강점기 창고가 들어서기 전 삼례읍내와 만경강을 이어주는 넓은 습지의 주인이었던 맹꽁이들을 향해, 인간의 환경파괴에 대한 반성과 경의를 표하는 것에서부터 이 곳 삼례문화예술촌은 시작된다.

정문을 지나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무는 곳은 모모미술관이다. 여러 사람과 사물의 이러저러한 면을 통틀어 말하는 의미의 ‘모모’라는 이름에서 보여지듯, 모모미술관은 다양한 작가와 미술장르를 선보이고,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전시로 관람객의 마음을 살찌우게 하고, 관람객의 생활을 보다 풍부하고 윤기 있게 하는 양식이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의 작은 조형 공원을 지나 다음 건물인 디지털아트관은 예술작품으로 이루어진 상상속 세상을 가상공간으로 구현하는 예술과 과학, 상상과 감성, 교육이 결합된 체험형 영상관이다. 이곳은 VR(가상현실기술), 인터렉티브영상 등 재미있는 체험공간구성과 아름다운 미술작품세계를 영상으로 구현한 미디어아트까지 미디어를 이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아트관 앞은 후각을 자극하는 목공소가 있다. ‘김상림목공소’는 조선 목수들의 삶의 철학이 스며있는 목가구를 재현하고, 목수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 확실한 실체였던 옛 목수연장을 컬렉션하여 목가구를 통해서 드러나는 선조의 미감과 철학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모모미술관의 뒤편에 위치한 ‘문화카페 뜨레’는 차를 마시고 즐기는 공간이라는 기본개념에서 벗어나 문화의 향기를 느끼고 예술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창고형 건물을 그대로 리모델링한 곳으로 유명작가들의 기획전시와 수준 높은 예술공연 등을 함께하며 지역민과 관광객들에게 만남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되고 있다.

그 외에도 인쇄기, 책 등 인쇄물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책공방 북아트센터’를 비롯해 ‘소극장 시어터애니’과 ‘커뮤니티 뭉치’ 등 삼례문화예술촌은 아날로그 감성이 잘 묻어나 있는 공간으로 잘 꾸며져 있다.

나가는 길에는 ‘느린 우체통’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편지를 써서 넣으면 1년 후에 배달되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우체통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체통이라는 소소한 콘텐츠 하나만 보더라도 역사적 공간을 재탄생시킨 삼례문화예술촌이 많은 고민과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 읽혀질 정도다.

양곡창고 중심으로 도시재생 중... 목적·실현구상의 중요성 일깨워
완주군 삼례읍 일대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며 동학농민혁명 봉기의 장소이기도 하다. 2010년 이후 완주군은 이러한 점을 살려 이 일대를 문화관광과 교육을 접목시킨 새 공간으로의 재생사업에 적극적이다. 

삼례문화예술촌과 같이 완주군은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 사이에 지어진 양곡창고의 재생으로 새로운 멋스러움을 만들어내는 거리로 삼례읍 공간을 꾸며가고 있다. 인근의 양곡창고를 재생한 ‘삼례책마을’ 역시 고서점과 헌책방, 북카페로 이루어진 북하우스를 중심으로 한국학아카이브, 전시와 강연 시설을 갖춘 북갤러리로 변모했다.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책마을, 생태문화탐방로 등으로 이어지는 도시재생 마을의 조성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발길이 뜸하던 마을에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입과 눈으로 삼례는 알려지고 있다. 

책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삼례읍.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문화. 문화예술과 관광 그리고 일제강점기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교육적 공간으로의 삼례읍 도시재생은 분명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

대통령상, 문체부 지역문화브랜드 대상에 이어 한국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도시재생. 그 목적과 구체적 실현 구상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일깨워 준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