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죠. 당신도 그렇습니다”

자연해설가 추순희 씨
[2020년 6월 19일 / 제274호]
노경선 기자l승인2020.06.19l수정2020.06.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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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영암에살다
지난해 영암군이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됐다. ‘여성의 성장과 안전, 행복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뜻의 여성친화도시. 영암 속에서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펐던 그녀들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수필가, 시나리오 작가, 자연해설가, 노인맞춤생활지원사, 그리고 엄마. 

때 묻지 않은 밝은 미소와 똑 부러지는 말투, 감정을 절제하는 몸짓으로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추순희 자연해설가를 수식하는 단어다.

그녀는 지난 2002년부터 17년 간 월출산 자연해설가로 활동하며 서로를 느끼며 위로받았던 월출산과의 이야기를 담아낸 수필집 ‘숲은 번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를 발표한 수필가로 로드킬로 희생당하고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연극 등 4편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간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도 받지 않았다는데, 읽는 이들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는 그녀의 글들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내 삶 중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보낸 곳이 월출산이에요. 위로를 받고자 간 건 아니었지만 그 즈음에 들이닥친 많은 시련을 이겨 낼 수 있는 자양분이 돼 준 곳이죠. ‘숲은 번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제목도 자연에서 배운 ‘이기는 법’을 떠올리며 지은 것이죠. 식물에게 필수인 질소를 번개가 분해해서 식물이 흡수할 수 있게 만들어주거든요. 나에게 자연은 번개 같은 존재입니다”

우연히 접한 자연에 깊이 빠져 시작하게 된 자연해설가는 그녀의 삶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었다.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시시한 해설이 싫어 매일 도서관을 찾았다. 하나를 배우면 다른 둘이 이어지는 자연공부가 재밌었다. 그렇게 3년을 매진했다.

“전국에는 아주 열성적으로 하시는 자연해설가분들이 많죠. 전 거기다 더해 스토리텔링을 얹어보자 생각했어요. 스토리텔링을 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해요. 사실 공부라는 것이 어렵고 딱딱한 느낌이지만 전 너무 재밌었어요. 한권을 다 읽기도 전에 읽고 싶은 책이 또 눈에 들어와요. 그러면 그 책을 읽으려고 또 얼른 책을 읽죠. 그렇게 자연에 스토리를 입혀놓으니 아이들이 참 좋아했어요. 물론 어른들도 굉장히 흥미로워 하죠. 교수님들, 선생님들이 단체로 저한테 해설을 듣고 싶다고 오시기도 했으니까요. 저도 재밌으니까 했던거죠. 임금도 안 받는 일을 17년이나 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사랑하는 일이었다는 얘기죠”

전북 진안이 고향인 그녀는 학급반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재기발랄했던 여고생 시절, 모두 대학에 진학 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로하고 부사관이 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께서 군인 출신이신데다 제 적성에도 잘 맞을 것 같았거든요. 부모님도 찬성하셨죠. 그런데 당연히 합격하겠지 싶었던 부사관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학교장 추천서도 있었고 성적과 체력도 괜찮았는데 말이죠.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어린생각에 방황했죠. 졸업하고 몇 년 동안 말 그대로 허송세월을 보냈어요. 그러다 소개로 남편을 만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게 됐어요. 그저 집이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던 시절이니 그런 선택을 한 거죠”

나이 스물셋, 어린 치기에 선택한 남편은 13살 차이가 나는, 그리고 아이가 둘이 있는 이혼남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등지고 남편을 따라 영암에 발을 디딘 그녀는 차마 글로 담아 낼 수 없을 만큼 지독히도 아픈 삶을 감내해 왔다고 했다.

“영암에 내려오고 한 달 만에 15키로 정도가 빠졌어요. 그래도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그때는 사회분위기가 이혼을 용납하지 못했거든요. 특히 여자는 더 크게 죄악시 하던 시절이죠. 그냥 버텼던 것 같아요. 그래도 아이들을 대할 때는 진심이었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적 친구들과 놀다가도 ‘엄마~’하고 두 팔 벌려 뛰어오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아이들에게는 진짜 엄마이고 싶었어요. 지금은 둘 다 외지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절 많이 생각하고 챙겨줘요. 항상 고맙죠. 정말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에요”

이제는 노인맞춤생활지원사로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추순희 작가는 꼭 써보고 싶은 책이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할머님들과 지내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좋아요. 마감의 시간을 갖는 그 분들의 여유로움이 전해진 달까. 앞으로 기회가 되면 모든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써보고 싶어요. 가제이긴 하지만 제목도 지어놨어요. ‘친정은 눈물이다’. 전에 냈던 책을 지금 읽어보니 오만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조금 더 원숙한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나무의 나이테처럼 저도 한 단계 성숙해졌으니까요”

이제는 마음의 상처에 굳은 딱지가 내려앉아 과거의 고통스러움도, 편치만은 않은 현실도 모두 내려놓고 살고 있다는 추순희 작가. 특유의 밝은 미소 뒤에 감춰진 그녀의 상처에 새 살이 돋아나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본다.

노경선 기자  demat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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